봄날 같았던 그 짧은 만남
예전엔 집집마다 전화가 없었거든요. 그러니 서로 약속을 했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다른 연락 방법이 없어 정말 곤란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랬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며 서울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가 한 여자친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키가 작고, 하얀 얼굴에 유난히 예쁜 입술을 가진 아이였죠. 그 친구는 항상 우리 무리와 함께 어울리며 어디든 같이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빵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걸 알게 되자, 자기는 크림빵을 무척 좋아한다며,
“일요일마다 제과점에 빵 묵으러 갈래. 괜찮나?”
그 말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둘만의 약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일요일 오후 세 시. 그 시간은 어김없이 그녀를 만나는 날이 되었지요. 저는 주말이면, 500원을 챙깁니다. 크림빵 두 개, 따뜻한 우유 두 잔. 가끔은 그녀가 더 많이 먹게 크림빵 세 개.
그런데,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이 머지않았던 어느 일요일,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을 기다린 후 그냥 집으로 가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제과점 앞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다른 연락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만났건만, 어디 사는지 전화번호도 주소도 몰랐으니까요.
결국 그녀를 소개해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울산에 있는 공대에 합격해서 며칠 전 이미 떠났다고 하더군요. ‘무심한 놈’. 하긴 저도 입학 준비로 정신없었으니. 그래서 일단 다음 주에도 약속 장소에 나가봤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과점에 편지를 남겼습니다.
“나 다음 주에 서울 가거든. 금요일 아침 9시 통일호 기차로. 혹시 이 편지를 보게 되면,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제과점에 네 주소랑 연락 방법 좀 남겨줄래. 내가 제과점 아줌마에게 부탁했거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책과 옷가방, 이불보따리를 짊어지고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역시 그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전한 마음으로 열차에 올라 무심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옆자리 승객인가 싶어 표를 보여주려는 순간, 그녀였습니다.
“앵두야!”
그녀는 하얀 얼굴에 작은 입술이 유난히 붉어 친구들이 ‘앵두’라 부르곤 했지요.
“표가 입석밖에 없더라. 니가 입석해라, 내가 앉아갈게.”
“내가 니 서울까지 데려다주고 싶어서 역에 오니까, 동대구까지 가는 표밖에 없더라. 내가 동대구까지만 같이 가줄게.”
그 순간, 솔직히 기뻐서 뽀뽀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바꿔가며 앉았다 일어서면서 동대구까지 함께 갔죠.
“와, 빵집에는 안 나왔노?”
제 물음에 그녀는 잠시 눈길을 피하더니, 마치 남의 일처럼 말했습니다.
“우리 집 이사 간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진주 옆에 시골로 이사 간다.”
“그럼 니는?”
“나는 아무래도 재수해야 될 끼다. 엄마가 아픈데, 우짜겠노.”
그렇게 사정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동대구가 가까워졌습니다. 열차 칸 한 구석에서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우리는 헤어져야 했습니다.
“내가 서울 가면 하숙집 주소 보내주게. 니도 답장하면서 진주 주소 꼭 보내라. 알았제?”
그런데 눈치 없는 기차는 왜 그리 빨리 달리는지. 동대구에 도착하자, 서먹서먹한 작별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제게 다가와 뽀뽀를 했습니다.
순간 멍하니 얼어버린... 뭐가 뭔지 혼미하기만 했죠.
“잘 가라, 보고 싶을 기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작별을 고했습니다.
저는 열차 창문에 매달려 한참을 바라보며 흐려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그 모습이 제가 기억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줄이야.
앵두를 소개해준 친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앵두는 오래전부터 백혈병을 앓아왔지만, 다행히 병세가 호전되어 한동안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린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앵두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제과점에 앉아 있던 날이었겠죠.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길 권했지만, 가족들의 형편으로는 그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군요. 그 시절의 의료기술은 미흡했고, 집집마다 살림 또한 빠듯했습니다. 가족들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앵두를 시골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후로 앵두의 소식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지요. 어쩌면 다들 알고 있었지만, 제게만 전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이후로 저는 빨간 앵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앵두가 보고 싶습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