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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21.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일곱 번째 이야기

기다린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

기다린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길냥이들도 어느 순간부터 기다리는 것을 배웠나 보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들은 안전한 철망을 벗어나 수돗가로 나와 서성거린다. 

처음에는 수돗가에서만 안절부절못하며 우리가 가까워지기만 기다리더니, 조금씩 조금씩 맞이하러 나오는 거리가 길어졌다. 이제는 아주 멀리서 우리가 걸어오는 모습만 보여도 길가로 뛰어나와 우리를 맞이하고 함께 수돗가로 행진을 한다. 


지나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경이롭다는 듯 쳐다보고는 한다. 

가끔씩 우리 편의에 따라 시간을 바꾸고, 건너뛰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은 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길들여졌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거야.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길들인다는 건 서로에게 경계를 푸는 것...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


경계를 풀고 다가선 녀석들은 더 이상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먹이를 먹고 나서도 함께 장난치며 우리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우리 곁을 맴돌고 심지어는 옆에서 졸기까지 한다. 

텅과 귀염둥이는 배가 부르면 꼭 딸아이 옆으로 와서 편하게 엎드린다. 

쓰다듬어 달라는 얘기다. 

그러다 기분이 좋으면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만 보여준다"는 그 "벌러덩 신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스티는 늘 보트 옆 덤불 안에서 자는 녀석인데 우리가 먹이를 주고 다른 고양이들과 놀고 있으면 저렇게 가까운 곳에 누워서 미소를 띠며 졸고 있다. 


우리에게 자신을 맡길 만큼, 우리 앞에서 마음 놓고 졸아도 좋을 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들은 차갑고 독립적이며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편견일 뿐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을 잘 따르고 사람의 손길을 좋아하며 자기가 따르고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애교도 부릴 줄 안다.

물론 길냥이들은 많은 폭력과 위험에 노출되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사에게 길들여진 집고양이에 비해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열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낸다.  

우리가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면 주변으로 몰려드는 길냥이들...

가지 말라는 무언의 항의이고, 내일도 같은 시간에 다시 오라는 압력이다.

그리고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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