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AI가 자리를 위협할 때, 마음은 어떻게 떠나는가

by 테오
article_06_withdrawal_progression.png 출처: 마누스


요즘 같아선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직서를 내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망설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흥미롭게도, 조직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직원이 조직을 떠나는 과정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바로 ‘조용한 사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이 ‘마음이 떠나는 과정’은 더욱 가속화되고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AI가 내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단행되는 ‘AI 해고(AI Layoffs)’의 공포는 직원들을 실제 이직으로 내모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고 있습니다.




AI 해고의 역설: 생산성 향상보다 빠른 인력 감축


많은 기업들이 생성형 AI 도입을 통해 막대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인력 감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릅니다. 가트너(Gartner)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에 단행된 해고 중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경우는 1%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AI’를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이러한 현상을 ‘AI 해고가 AI 생산성 향상을 앞지르는(AI Layoffs Are Outpacing AI Productivity Gains)’ 위험한 추세라고 경고합니다. [1] 아직 AI가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기도 전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근거로 섣불리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급한 ‘AI 해고’는 조직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극심한 고용 불안을 안겨주고, 결국 유능한 인재들마저 스스로 조직을 떠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조용한 사직에서 실제 이직까지, 마음이 떠나는 4단계


최근 제가 진행했던 연구와 전통적인 조직심리 연구에서 밝혀진 바를 AI 시대에 적용해보면, 이러한 AI 시대의 불안 속에서, 조용한 사직이 실제 이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4단계를 거쳐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3]


1단계: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

- 상태: ‘AI가 결국 내 일을 대체할 텐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에 추가적인 노력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AI 기술 학습을 회피하거나,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며 조직과 거리를 둡니다.

- 심리: "어차피 AI가 할 일인데., 나의 전문성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2단계: 직무 만족도 저하 (Decreased Job Satisfaction)

- 상태: AI와의 협업 과정에서 일에 대한 통제감과 성취감을 잃고, 직무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일에서 더 이상 의미나 성장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 심리: “일이 재미없다.”, “나는 AI의 보조 역할일 뿐인가?”


3단계: 정서적 몰입 약화 (Weakened Affective Commitment)

- 상태: 일에 대한 불만족이 회사 전체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으로 확산됩니다. 회사가 나를 언제든 AI로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여긴다고 느끼며, 조직에 대한 애정이나 소속감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 심리: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이 조직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4단계: 이직 의도 형성 (Turnover Intention)

- 상태: ‘AI 해고’의 다음 차례가 되기 전에, 혹은 더 늦기 전에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인정해주고, AI 시대에도 성장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곳을 찾아 구체적인 이직 준비에 나섭니다.

- 심리: “여기서는 미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직무 만족 vs. 정서적 몰입: AI 시대,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직무 만족과 정서적 몰입의 차이입니다.


image.png Kim, K. T., & Sohn, Y. W. (2024) 기반 저자 작성


제가 진행한 연구에서는 조용한 사직이 직무 만족과 정서적 몰입을 순차적으로 거쳐 이직 의도로 이어지는 경로가 확인되었습니다. [2] 이 경로 자체가 직무 만족과 정서적 몰입 사이의 선후 관계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직심리학의 이탈 진행 이론(Withdrawal Progression Theory)은 이 두 태도 사이의 순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Krausz 등(1998)의 종단 연구에 따르면, 조직 이탈은 경미한 형태에서 심각한 형태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직무 불만족이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매개 역할을 합니다.[3]


이 논리를 확장하면, 매일의 업무에서 느끼는 만족감의 저하(직무 만족)는 비교적 경미한 태도 변화인 반면, 조직 전체에 대한 정서적 유대가 무너지는 것(정서적 몰입)은 보다 근본적이고 심각한 변화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일이 싫어지는 것'이 먼저 나타나고, '회사가 싫어지는 것'은 그 이후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러한 순서가 반드시 지켜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AI 해고의 위협은 직원과 조직 간의 근본적인 신뢰 관계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일에 대한 만족도와 상관없이 조직에 대한 정서적 유대를 먼저 약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즉, AI 시대에는 '일이 싫어지기도 전에 회사가 싫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인재 유지는 단순히 흥미로운 업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당신은 AI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당신의 성장에 함께 투자할 것'이라는 신뢰와 비전을 심어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연쇄 반응을 중간에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조용한 사직이 직무 불만족으로, 나아가 정서적 몰입 약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늦춰줄 '완충제'는 없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유력한 해답으로 주목받고 있는 '심리적 안전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References


[1] Aykens, P., Lowmaster, K., McRae, E. R., & Shepp, J. (2026, February 2). 9 Trends Shaping Work in 2026 and Beyond. Harvard Business Review.

[2] Kim, K. T., & Sohn, Y. W. (2024). The Impact of Quiet Quitting on Turnover Intentions in the Era of Digital Transformation: The Mediating Roles of Job Satisfaction and Affective Commitment, and the Moderating Role of Psychological Safety. Systems, 12(11), 460.

[3] Krausz, M., Koslowsky, M., & Eiser, A. (1998). Distal and Proximal Influences on Turnover Intentions and Satisfaction: Support for a Withdrawal Progression Theory.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52(1), 5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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