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리더십과 조직문화
"실패해도 괜찮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팀에서 마지막으로 실수, 또는 실패를 공유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아마 기억이 잘 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실패는 숨기거나, 빨리 잊어야 할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People Analytics를 하면서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잘못된 전제를 깔고 몇 주를 허비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팀 앞에서 솔직하게 공유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틀렸습니다"라는 말을 하려면, 그 말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 조직의 성패를 어떻게 가르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아주아주 오래된 사례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글이 수년간 자사 팀들을 분석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Project Aristotle)'라고 불리는 이 연구는 180개 이상의 팀, 250개 이상의 변수를 분석했습니다 [1].
연구진이 처음에 예상한 것은 이랬습니다. 뛰어난 인재를 모아놓으면 성과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성과가 높은 팀과 낮은 팀을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은 팀원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팀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함께 일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 부른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1].
구글의 데이터에서,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은 이직률이 낮았고,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했으며, 경영진에 의해 '효과적'이라고 평가받을 확률이 2배 높았습니다 [1].
흥미롭게도 이 개념은 병원에서 먼저 검증되었습니다. 에드먼슨 교수의 초기 연구(1999년)에서, 의료 오류를 더 많이 보고한 팀이 오히려 더 좋은 환자 결과를 보였습니다 [1].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논리는 단순합니다. 실수를 숨기는 팀보다 드러내는 팀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실수하는 팀이 아니라, 실수를 더 많이 보고하는 팀이 좋은 결과를 낸 겁니다. 직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에드먼슨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심리적 안전감이 더 중요해집니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잘못될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AI 시대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이 말이 지금만큼 와닿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이제 많은 조직에서 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멈춘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리더가 말해도, 정작 실패한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팀원들이 목격한다면, 그 말은 빈 껍데기가 됩니다.
BCG의 2015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31%가 '위험 회피적 문화'를 혁신의 핵심 장애물로 꼽았습니다 [2]. 실패를 용인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실패를 피하는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줄리안 버킨쇼(Julian Birkinshaw)와 와튼 스쿨의 마틴 하스(Martine Haas) 교수가 흥미로운 개념을 제안합니다. 201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ROF, 실패수익률(Return on Failure)입니다 [2].
투자에 ROI가 있듯, 실패에도 수익률이 있다는 뜻입니다. ROF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ROF = 실패에서 뽑아낸 통찰(분자) ÷ 실패에 투입한 자원(분모)
ROF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갈래입니다. 분자를 늘리거나, 분모를 줄이는 것입니다 [2].
분모를 줄이는 것은 '빨리 실패하는 것'입니다. 프로토타이핑, MVP(최소 기능 제품)로 아이디어를 저렴하게 검증하면, 실패의 비용이 줄어듭니다. 분자를 늘리는 것은 '깊이 분석하는 것'입니다. 실패 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다음에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추출하면, 같은 실패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버킨쇼 교수의 표현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패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내면, 실패는 덜 아프다." [2]
여러분의 조직은 실패의 ROF를 측정하고 있나요. 아니면 실패를 빨리 잊으려고만 하고 있나요?
ROF를 높이려면, 먼저 실패의 종류를 구분해야 합니다. 에드먼슨 교수는 실패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고 [1],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의 장은미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에서 이 분류를 인용하며 각 유형에 맞는 대응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첫째, 예방 가능한 실패(Preventable Failure)입니다.
역량이나 기술 부족으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매뉴얼을 정비하고 업무 교육을 강화하면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의 실패는 '용인'보다 '예방'이 핵심입니다. 반복되는 실수를 "괜찮아"로 넘기면,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둘째, 복잡성 실패(Complexity Failure)입니다.
업무 간 연계와 상황의 복잡성 때문에 생기는 오류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예방이 어렵습니다. 병원 응급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실패에는 작은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챙김형 관리'가 필요합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팀 차원에서 신호를 감지하고 공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뤘던 AI 피로 글의 BCG 'AI 브레인 프라이' 연구를 떠올려 보면, AI 도구를 4개 이상 동시에 쓰면 중대한 실수 빈도가 39% 증가한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잡성 실패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개인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복잡성이 인지 용량을 초과해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셋째, 현명한 실패(Intelligent Failure)입니다.
신약 개발이나 신규 시장 탐색처럼,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감수하는 실패입니다. 이것이 바로 ROF를 극대화해야 할 영역입니다.
현명한 실패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사전에 가설이 있어야 하고, 검증 방법이 설계되어야 하며, 결과에서 배움이 추출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그것은 현명한 실패가 아니라 무모한 시도입니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실패를 똑같이 다룬다는 것입니다. 예방 가능한 실패에는 관용을 베풀고, 현명한 실패에는 책임을 묻는 — 정확히 반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패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공의 덫입니다.
장은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축적된 성공 경험은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조직과 구성원이 자신 있는 방식에 매몰되게 만든다고 [3]. 이것은 '역량의 함정(Competency Trap)'이라고도 불립니다. 과거에 잘했던 방식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겁니다.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은 불편한 피드백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바꿔야 하지?"라는 생각이 조직 전체에 퍼질 때, 외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가 무뎌집니다. 장은미 교수는 이것을 '실패 둔감성'이라 부르며, 이것이 우수 기업의 문화를 빠르게 무력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3].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100년 이상 지속된 기업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100년 이상 생존한 기업들은 미션에 특정 제품이나 기술을 명시하지 않고,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왔습니다. 반면 30년도 넘기지 못한 기업들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집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지금 여러분의 조직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AI 시대에 실패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집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몇 주가 걸리던 것이 몇 시간으로 줄어들고, 시장 반응을 예측하는 데 대규모 조사가 필요했던 것이 AI 분석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ROF 공식의 분모(실패에 투입하는 자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분자(실패에서 뽑아내는 통찰)는 자동으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AI가 "이 아이디어는 실패할 확률이 78%입니다"라고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왜 실패했고, 다음에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제 글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AI 시대 교수의 역할 글에서 다뤘던 '논리적 추론과 경험적 판단의 차이', 누구나 코딩하는 시대 글에서 다뤘던 '도구를 쓰는 것과 도구의 결과를 판단하는 것의 차이'.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AI가 실패의 비용을 낮춰주는 시대에, 실패에서 배우는 조직 역량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팀은 어떻게 시작할까요? 에드먼슨 교수는 심리적 안전감이 회의 시간에 발언 기회를 늘린다거나 1:1 미팅 횟수를 늘린다고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 "편하게 이야기하라"라고 말로 강조하는 것보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구성원들이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에드먼슨 교수의 TEDx 강연에서 제시한 세 가지 출발점이 있습니다 [1].
첫째, 일을 '실행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문제'로 프레이밍 하는 것입니다. "이걸 왜 못했지?"가 아니라 "이걸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지?"로 바꾸는 겁니다.
둘째, 리더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말이 구성원에게 "당신도 틀려도 괜찮다"는 신호가 됩니다.
셋째, 호기심을 모델링하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답을 주는 리더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리더가 심리적 안전감을 만듭니다.
무엇보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실수를 공유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장은미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대리 학습(Vicarious Learning)'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3]. 내가 직접 실패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고 들으면서 학습이 발생합니다.
대리 학습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실패 정보의 공유입니다. 실패가 숨겨지면 대리 학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실패 정보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다른 팀의 실패 사례를 공유받았을 때, "저 팀은 못하네"가 아니라 "우리도 저런 상황이면 같은 실수를 했을 수 있겠다"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결국 심리적 안전감 → 실패 공유 → 대리 학습 → 조직 역량 향상이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순환의 어느 한 곳이 끊어지면, 실패는 자산이 아니라 비용으로만 남게 됩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2025 HRD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심리적 안전감 구축'이 조직개발 우선순위 5위에 올랐습니다 [4].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실행의 영역에 들어온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 팀을 이끌거나, 조직을 이끌고 계시다면, 거창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변화 하나가 문화를 바꿉니다.
첫째, '이번 주의 실패'를 공유하는 시간을 5분만 확보해 보십시오.
주간 미팅 마지막 5분, "이번 주에 내가 한 실수나 시도했다가 안 된 것이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라고 여는 겁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겁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이번 주에 저는 이런 전제를 깔고 분석을 했는데, 중간에 전제가 틀렸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팀 전체의 공유 허들을 낮춥니다. 중요한 것은, 공유된 실패에 대해 절대 비난이나 조롱이 따라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그걸 왜 몰랐어?"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5분은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실패를 유형별로 분류해 보십시오.
팀에서 발생한 실패가 예방 가능한 것이었는지, 복잡성에서 온 것이었는지, 새로운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구분하는 겁니다. 유형이 다르면 대응도 달라야 합니다. 예방 가능한 실패가 반복되면 프로세스를 점검해야 하고, 현명한 실패에서는 "다음에 어떤 가설을 세울 것인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 구분 자체가 팀의 실패 대응 역량을 높입니다.
셋째, '성공 점검(Success Audit)'을 해 보십시오.
실패 분석은 많은 조직이 하지만, 성공 분석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유가 정말 우리의 역량 때문인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인가"를 솔직하게 되돌아보는 겁니다.
성공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공했을 때 오히려 더 엄격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해서 된 것"과 "환경이 도와줘서 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팀이, 환경이 바뀌었을 때 빠르게 적응합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다음 주에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하지 못합니다. 어색하더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아무리 좋은 이론을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편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에드먼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심리적 안전감은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솔직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1].
ROF(실패수익률)는 실패를 정당화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실패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추출하는 방법론입니다. 실패의 세 가지 유형을 구분하지 않으면, 예방 가능한 실패에 관용을 베풀고 현명한 실패에 벌을 주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성공의 덫은 실패보다 조용하지만 더 치명적입니다. 과거에 잘했던 방식이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는 착각이, 조직의 학습 능력을 서서히 무력화합니다. 그리고 AI 시대에 실패의 비용은 낮아지고 있지만,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은 자동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 마지막으로 실패를 공유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그 기억이 선명할수록 여러분이 속한 조직은 건강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먼저 실수를 동료들에게 공유해 보시면 어떨까요?
[1] Edmondson, A. C.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Edmondson, A. C. (2018). The Fearless Organization. Wiley.; Google re:Work. Project Aristotle. (180개 팀 분석: 심리적 안전감이 성과의 가장 큰 예측 변인, 고성과 팀 효과성 2배)
[2] Birkinshaw, J., & Haas, M. (2016). Increase your return on failure. Harvard Business Review, 94(5), 88-93. (ROF = 통찰/자원, BCG 2015: 31% 위험 회피적 문화를 혁신 장애 1순위로 지목)
[3] 장은미. (2026). 고신뢰조직에서 성장마인드셋까지: 불확실성 시대의 경영 담론.; Edmondson, A. C. (2011). Strategies for learning from failure. Harvard Business Review, 89(4), 48-55. (실패의 3유형: 예방 가능/복잡성/현명한 실패, 성공의 덫과 실패 둔감성, 대리 학습)
[4] 한국생산성본부. (2025). 2025 HRD Trend Report. (심리적 안전감 구축: 조직개발 우선순위 5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