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얼마 전, 사내 People Analytics 교류회에서 발표를 준비하면서 최근 3년간 나온 '일자리에 대한 AI의 영향' 관련 연구들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23년 OpenAI의 "GPTs are GPTs" 논문부터 이번 달 나온 Anthropic의 81,000명 인터뷰 연구까지. 불과 3년 사이에 방법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훑어보는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AI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AI의 영향 연구에 대한 전체적인 지형도를 짚어보겠습니다. 불과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연구 방법론은 극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세대 구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아래와 같이 연구 방법론을 3세대로 나누어보았습니다. 분석의 단위 역시 '업무(Task)'에서 '대화(Conversation)'로, 그리고 '스킬(Skill)과 경험(Experience)'으로 확장되습니다.
1세대 (2023~2024): 전문가와 LLM의 '판단'에 의존하다
생성형 AI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연구들은 직관적이었습니다. 2023년, OpenAI는 GPT-4를 분류기로 활용해 "미국 노동력의 80%가 최소 10% 업무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1]. 같은 해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를 글로벌로 확장해 사무직의 높은 노출도를 경고했죠 [2]. 하지만 이 시기 연구들은 "이 업무가 AI로 자동화될 수 있는가?"를 LLM이나 전문가에게 묻는 정적인 스냅샷에 불과했습니다.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사용' 사이의 괴리가 컸습니다.
2세대 (2025): '실사용 데이터'를 관측하기 시작하다
2025년에 전환점이 옵니다. Anthropic과 MS Research는 각각 Claude와 Copilot의 실제 사용자 대화 로그 수십만 건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3]. "물어보지 말고, 사람들이 실제로 플랫폼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측하자"는 접근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AI 노출의 핵심 영역은 직군을 불문하고 글쓰기, 정보 수집, 커뮤니케이션 등 '정보 업무(Information Work)'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3세대 (2025~2026): 시뮬레이션과 대규모 '질적' 경험을 포착하다
가장 최근의 연구들은 1, 2세대의 사각지대를 비춥니다. MIT의 'Project Iceberg' 연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 방법론이 포착한 AI 노출(수면 위 2.2%)은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로는 5.3배 규모의 숨겨진 노출(11.7%)이 존재함을 밝혀냈습니다 [4]. 더 이상 단편적인 Task가 아니라 복합적인 'Skill' 단위로 접근해야만 실체가 보인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이러한 11건의 굵직한 연구들을 관통하는 조직/HR 관점의 중요한 공통 발견이 있습니다.
첫째, 고학력·고소득일수록 AI 노출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과거 기술 혁신이 블루칼라 일자리를 위협했던 것과 달리, 생성형 AI는 화이트칼라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규모 일자리 소멸의 증거는 아직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고용 수준의 축소가 아닌, 일하는 방식 즉 '업무 구성(Task Composition)'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동화(Automation)보다 인간을 보조하는 증강(Augmentation)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최근 Anthropic이 경제 노출도를 정밀 측정하기 위해 도입한 5가지 프리미티브(기술 수준, 복잡도, 자율성, 성공률, 용도) 중 '성공률(Success Rate)'의 개념은 조직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3]. 단순히 "기술적으로 AI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를 넘어, "AI가 업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완수하는가"를 가중치로 두었을 때 비로소 현실적인 '실효 노출도(Effective Coverage)'가 산출됩니다.
3년간의 연구들이 점점 정교하게 측정해 왔지만, 대부분 같은 질문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번 달, Anthropic이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5].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바라나요?"
159개국, 70개 언어, 81,000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질적 연구입니다. Claude가 직접 인터뷰어 역할을 해서, 고정 질문을 던지고 답변에 따라 후속 질문을 적응적으로 생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AI에 가장 바라는 것 1위는 'Professional Excellence(전문적 탁월함)' , 일을 더 잘하고 싶다, 18.8%였습니다 [5].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입니다. 그런데 2위부터가 의외였습니다. 개인적 변화(13.7%), 삶 관리(13.5%), 시간의 자유(11.1%)가 뒤를 이었습니다 [5].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이메일을 빨리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쓰고 나서 아이와 놀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뤘던 AI 피로 글의 결론과 겹칩니다. "AI를 '더 많이 일하는 데' 쓸 것인가, '더 잘 사는 데' 쓸 것인가." 81,000명의 답은 명확했습니다.
이 연구의 진짜 통찰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려 사항 1위는 '일자리 상실'이 아니었습니다. '신뢰성 부족(Unreliability)' 26.7%였습니다 [5]. 할루시네이션, 잘못된 인용, 부정확한 정보. 그 뒤를 일자리 우려(22.3%), 자율성 상실(21.9%)이 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AI를 긍정하는 집단과 우려하는 집단이 따로 나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진은 이것을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e)'라고 불렀습니다 [5].
학습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 동시에 인지 퇴화를 걱정합니다.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이, "결국 더 바빠지기만 하는 것 아닌가"를 우려합니다. 정서적 지원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 정서적 의존을 우려할 확률은 3배였습니다 [5].
AI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별개의 집단이 아닙니다. 같은 사람 안에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밸러랜드의 '열정의 이중 모델'이 떠올랐습니다. 조화로운 열정과 강박적 열정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듯이, AI에 대한 기대와 불안도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두 감정의 동시 경험인 것 같습니다.
한 응답자의 말이 이러한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나는 AI로 계약서를 검토하고 시간을 절약합니다... 동시에 두렵습니다. 혼자서 읽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5]
AI에 대한 긍정 감정이 가장 높은 곳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76%), 가장 낮은 곳이 서유럽(64%)이었습니다 [5]. 전체적으로 저소득 국가가 더 낙관적이었는데, 이들은 AI를 '위협'이 아니라 '기회의 사다리'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에서는 AI를 통한 창업과 경제적 독립에 대한 열망이 특히 높았습니다 [5].
반면, 이미 경제적 안정을 갖춘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거버넌스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동아시아의 특징도 눈에 띕니다. 개인적 변화와 재정 독립 추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효도를 AI 활용의 동기로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5].
한국 직장인의 맥락에서 이 발견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AI를 "업무 효율화 도구"로 이야기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81,000명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효율" 자체가 아니라, 효율이 만들어주는 "삶의 여백"이라는 것입니다.
측정의 방식이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뀝니다
개인적으로, 발표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구 결과 자체보다, 방법론의 진화였습니다.
2023년에는 LLM에게 "이 일이 자동화될 수 있나?"를 물었습니다. 2025년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AI를 어떻게 쓰는지를 관측했습니다. 2026년에는 AI가 직접 인터뷰어가 되어 81,000명에게 "당신은 무엇을 원하나?"를 물었습니다. 질문이 바뀌니, 보이는 것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I가 몇 %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가"만 물으면, 답은 숫자 하나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를 물으면, 81,000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공통분모는 놀랍도록 인간적입니다. "일을 더 잘하고 싶다. 시간을 되찾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조직에서 AI를 도입할 때도 이와 같은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서에 AI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몇 % 오를까?" 대신, "이 팀원들은 AI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를 먼저 물어보는 것.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측정할지를 잘못 정하면, 관리하는 것 자체가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81,000명이 알려준 것은 결국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AI가 자신을 대체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AI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모순적인 감정을 모순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AI 시대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태도가 아닐까요?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바람의 뒷면에는, 어떤 두려움의 그림자가 함께 일렁이고 있나요?
[1] Eloundou, T., Manning, S., Mishkin, P., & Rock, D. (2023). GPTs are GPTs: An Early Look at the Labor Market Impact Potential of Large Language Models. arXiv:2303.10130. OpenAI. (미국 노동력 80%가 최소 10% 업무에 LLM 영향 가능)
[2] ILO. (2023). Generative AI and Jobs.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글로벌 근로자 4명 중 1명 AI 노출)
[3] Anthropic. (2025). The Anthropic Model Spec; Economic Index methodology. (Claude 사용 데이터 100만 건 분석, Economic Primitives 5가지 도입)
[4] Georgiou, A. et al. (2025). Project Iceberg: The Hidden AI Exposure Beyond Automation. MIT &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32,000개 스킬 단위 분석, 1억 5천만 명 시뮬레이션: 숨겨진 노출 5.3배)
[5] Anthropic. (2026, March 19). What 81,000 People Want from AI. (159개국, 70개 언어, 80,508명 인터뷰: Professional Excellence 18.8%, 신뢰성 부족 26.7%, 일자리 우려 22.3%, 빛과 그림자 패턴, 정서적 의존 우려 3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