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09

(25.11.15)

by 우리 아빠

'우리'의 주말.


우리 아기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그에 맞춰 나와 와이프는 자동 기상.


와이프가 아침을 준비할 때,

난 이불을 정리하고, "우리야, 잘 잤어?" 간밤의 아기의 안녕을 살핀다.


아침을 먹으면 와이프는 아기와 함께 목욕하러 직행.

나는 뒷정리 및 설거지를 한다. (사실 식세기가 해줌.)


아기와 와이프가 씻고 나오면 나는 '음쓰'를 버리러 나가 아침 공기를 한웅큼 마시고 내뱉는다.

그리고 이내 다시 돌아와 후딱 샤워를 하고 다시 아기와 와이프에게 다가간다.


'집에서 하는 ABA'

이렇게만 검색해도 유투브에는 관련 영상들이 넘쳐난다.

주중에 일을 하며 틈날 때마다 보았는데, 아직 무지하지만 내가 파악한 ABA는 이렇다.


'문제 행동은 줄이고, 좋은 행동은 강화물을 이용해 보상한다.'


내가 생각한 강화물은 뻥튀기다.

뻥튀기를 잘게 쪼개 락앤락통에 가득 담고 아기에게 다가갔다.


"뻥튀기 먹을 사람, 손!"

손을 번쩍 드는 아기.


"뻥튀기 먹으려면 책상 앞에 앉아!"

(거실에 조그만 접이식 탁상을 책상 대신 다용도로 쓰고 있다.)

이번에도 순순히 책상 앞에 앉는 우리.


"자, 우리 손 무릎!" (역시 성공!)

"이제 10을 다 셀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1, 2, 3, 4, 5 ...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우리는 걱정과 다르게 모두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따라 했다.

"이일, 이이, 사아암, 사, 오우 . . ."

그리고 숫자를 다 세면 뻥튀기를 주었다.


그리고 숫자가 적힌 블록 장난감을 또 다른 락앤락 통에 집어넣었다.


"자, 다음 뻥튀기는 이 블록들을 다 꺼내면 줄 거야."

역시나 성공. 기분좋게 뻥튀기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이 숫자 블록들을 다시 통에다 집어넣는데, 넣을 때마다 이게 뭔지 얘기해줘!"

"이일~, 이이이~. 사아암!"


무려 20분 정도를 아기가 잘 따라주었고,

마지막에는 10까지 숫자를 모두 외워서 얘기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는 흥미가 사라져 책상 앞에 앉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신이 없다.

뭔가 어설프게 했던거 같은데, 더 공부하고 시도하면

아기에게 점점 알맞은 그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후, 점심을 먹고 우리가 2월부터 언어치료를 받는 발달센터로 향했다.

오늘은 언어와 감통을 한 타임씩 받는데, 처음부터 함께 했던 언어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ABA를 공부하시는 언어 선생님께서 따로 계시고, 아직 자격증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언어 수업에 그 기법들을 적용해보고 있다는 얘기에 선생님을 변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아기를 위해 애써주셨던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감통 수업까지 무사히 마친 우리 아기.

좋아지고 있다는 선생님들의 격려는 잠잠하게,

아직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은 훨씬 커다랗고 소란스럽게 들었다.


그래도 이 역시 오늘보다 내일 좋아지기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그리고 차로 발길을 돌려,

숨 가쁘게 벌어지는 일들에 느낄 새도 없었던 가을을 구경하러 드라이브를 갔다.


'물의 정원'

남양주에 살게 되면서 종종 아기를 데리고 놀러 갔던, 북한강이 멋지게 둘러 있는 공원이다.


가는 길 부터 참 가을색이 가득했다.

아기는 곧바로 낮잠에 들었고, 피곤할 법도 한데 옆으로 펼쳐지는 강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는 와이프와

그렇게 오랜만에 가을을 느껴보았다.

그 가을이 너무 예쁘고 짙어 한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이 잔잔함과 평화로움을,

노랗고 붉은 가을의 그 풍경을 나의 가족들과 흠뻑 느끼며 살고 싶다.

반드시 그러리라.


울컥했던 마음을, 꾸역꾸역 불타오르는 다짐들로 접어 넣었다.


그리고 도착.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이 만연한 곳이지만, 아기는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 엄마 품을 찾아 안아 달라 팔을 뻗는 우리.


사실 진단을 듣기 전이었다면

"너무 엄마 껌딱지네. 우리 애기 귀여워" 하며 웃어 넘겼겠지만,

이제야 조금 더 아기의 시선에서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불안하다.'


낯선 곳이 무서운 것 같다.

그래서 엄마를 더 찾고, 발을 내딛는 게 싫은 것만 같다.

예민한 우리 아기의 특성이 조금 더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인절미 쿠키 줄께. 여기 벤치에 앉아"


겨우 진정해 쿠키를 입에 잔뜩 묻히며 먹는 너무 예쁜 우리 아기.

하지만 그 후 "인절미 쿠키 먹고 싶어."를 몇 번이나 외치며

그곳을 떠나기까지 한참을 찡얼대는 아기였다.


하지만 행복했다.


가을 햇살에 비치는 와이프와 아기의 모습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이유 같았다.

"너는 이 모습을 지키며 살아라" 누군가 계속 속삭이는 듯 했다.


아기의 찡얼거림을 조금은 피곤해하며 귀여워하고,

그 투정을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


너는 그렇게 살거라.

그럼 이 가을을 계속 느끼게 해줄게.


나는 그렇게 들렸다. 이 가을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삼겹살을 구워 저녁을 먹고,

와이프가 다시 아기와 목욕을 하는 사이 나는 뒷정리를 했고,

아기와 씻고 나온 와이프는 "오빠 운동 다녀와."라고 얘기해주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오래 살기 위해 아파트 헬스장에 운동을 다녀왔다.

(30분 정도 러닝머신을 타고 온다.)


집에 돌아와 얼른 샤워를 하고 있으면

잠을 위해 방으로 들어간 아기가 "아빠 들어오세요" 하며 나를 부른다.


"어부바 해줘!", "말 타고 싶어.", "비행기 타고 싶어.", "엄마 아빠 사이로 와!",

"엄마가 꼭! 아빠가 꼭! (엄마 아빠 사이로 들어온 아기를 우리 부부가 꼭 안아준다.)


30분여를 그러다 보면 아기와 와이프는 꿈나라 행.

(사실 와이프는 기절에 가까운 것 같다.)


그 후 살며시 나와 건조기에서 빨래들을 정리한 후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켜 일기를 쓰고 있다.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일기. 정제되지 않은 글.

그래도 난 이대로 기록을 남기련다.

이런 투박한 문체들조차 지금의 나의 모습일 테니.


내일은 또 어떤 상호작용을 해야 우리 아기에게 좋을까...


우리 아기, 오늘보단 내일 더 성장하려나...


아니, 성장 말고,

행복하려나...


내일 또 행복해야겠다. 나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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