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6)
성경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군중을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던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다면
자신의 병이 모두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결국 그 믿음은 치유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와이프와 아기의 손을 잡고 교회로 향했다.
10시 부터 유아부 예배를 1시간 남짓 드리고,
11시부터 이어지는 본 예배를 드린 후,
이 교회에서 가깝게 지내게 된 분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버거킹으로 가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원래는 유아부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의 진단을 듣게 된 지난주부터 이렇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 당분간 비슷한 일요일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유아부에서 우리 부부와 아기를 맡아주시는 선생님께선
환영 기도를 해주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아마 '우리'의 얘기를 전해 들으신 모양이다.
유아부 예배가 끝나며 그 선생님께 넌지시 여쭤보았다.
"저희 얘기 혹시 들으신거죠, 선생님?"
당황하시던 선생님은 이내 말을 꺼냈다.
"우리는 머리도 좋고, 잘하는 것만 얼른 찾아서 도와주시면
자립도 하고, 돈도 벌고 분명히 잘 살 수 있을거에요.
어휴... 제가 무슨 말을... 잘되실 거에요, 정말"
아마 그 선생님의 입장에선 있는 힘껏 던진 위로였을 것이다.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듯한 투박한 그 말들이
오히려 나에겐 따뜻하게 다가와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도 우리 애기 언제든 보시면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신에게 빌어보고, 의지해보고자 마음먹었던 생각들.
나는 우리 아기에게
'마을'을 만들어 주고 싶다.
우리 아기가 어떤 모습의 그 누군가가 되어도
그래도 한 번은 너를 축복한다,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허공에 휘발될 말들이라도 삶의 이유를 만들어 줄 따스한 배려들.
그리고 그 배려들이 가끔씩 불어오고, 자주 이야기되는
기존의 세상과 한 뼘 떨어진 '마을'.
'선데이 크리스천'인 내가 지금껏 교회를 붙들고 있는 원동력이자,
우리 아기에게도 느껴졌으면 하는 그 무엇이며,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처절한 인정이다.
그 '마을'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우리 아기의 친구가 되어주고,
와이프는 이 안에서 동료들을 만나 힘을 얻고,
결국엔 행복이라는 구원을 얻는 우리 아기.
내일 당장 회사로 달려가 돈을 열심히 벌고,
우리 아기의 ABA치료를 알아보며
눈앞으로 다가온 다른 병원 소아정신과의 초진 같은...
마주하게 될 현실이 너무 거대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비빌 언덕 하나쯤.
그 하나쯤은 되어주세요.
당신의 옷자락 한 귀퉁이를 잡게 해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