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14

(25.11.25)

by 우리 아빠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아내에게서 사진이 첨부된 카톡이 왔다.

사진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적어 주신 알림장 내용이었다.


"여러 명의 반 친구들이 있어 우리를 전담으로 보육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오늘은 우리가 다른 친구 입에 손을 넣으려는 모습이 여러 번 있었어요ㅠㅠ"


이윽고 아내가 말했다.

"오빠, 우리가 계속 우네ㅠㅠ 하원하고 계속 울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내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 한번 드려볼게."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과의 통화


"안녕하세요, 저 고우리 아버지인데요.

혹시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우리요? 아, 수첩 보고 얘기하시는 건가요 혹시."


"네, 수첩도 그렇고... 하원하고서 애기가 계속 울음을 안 그친다고 하더라고요."


"아니요, 수첩에 적어 놓은 사항 말고는 딱히 없었는데요."


"아, 네. 그럼 혹시 수첩에 적어주신 내용이 어떤 말씀 이신지 자세히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 제가 우리만 계속 보고 있을수가 없어서요.

혹시 친구 입에 손을 넣을 때 물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저희가 계속 살필 수가 없거든요.

반 친구들한테도 학기 초부터 친구 얼굴은 만지지 않는 거라고 계속 얘기해줬는데..."


"아, 네. 선생님."


"네, 아이들은 사고가 나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같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저는 선생님들께서 보육하시는데 많이 힘이 드시는 건지 걱정돼서 여쭤봤어요."


"네. 그리고 아버님, 하원 후에 우리가 우는 건 분명히 하원 후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 때문일 거예요.

근데 어린이집에서 우리가 기분이 좋지 않았으면 제가 안좋았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을 텐데...

이렇게 전화로 말씀을 하시면 좀 ..."


이 부분부터 식은땀이 났다.

'혹시 선생님께서 기분이 상하신걸까? 내가 성급하게 말씀드린 부분이 있었던 걸까?'


전화를 끊고도 생각이 많아졌다.

정리하자면, 선생님께서는 어린이집에서 나타난 행동을 가정에서도 연계해 교육해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입장에서 나의 말들은 충분히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난 '우리를 전담으로 보육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 말에 흔들리지 않기는 쉽지 않았고,

때마침 이유도 모른 채 우리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는 아내의 전화까지.


손발이 저려왔다.


어쩌면 어린이집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며 외로워하고 있을 우리도 떠오르고,

집에서 있는 힘을 다해 아기를 케어하고 있을 아내도 떠오르고, (심지어 아내는 오늘 건강검진을 받았다.)

정답을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는 나의 무능함도 떠올랐다.


이제 이런 일들의 연속이려나.

이제 시작이려나.


내일로 다가온 다른 병원 소아정신과의 초진에서는

또 무슨 얘기들을 듣고, 어떤 마음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우리 아기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게 맞을까.


오늘은 '이순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뉴스가 온 매스컴을 뒤덮었다.

나는 그분의 분야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90세에 연기대상을 받고 현역이라는 무대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던 모습,

몸에 베인 겸손과 숨길 수 없는 성실함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던 예술가,

모두의 어른이셨던 분.


또다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결국 삶은 지속되다 끝이 나고,

나는 그 끝에서 우리 아기와 아내를 꼭 붙잡고 있는 어른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내 일을 90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의 '우리'라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의 일들도 조금은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득한 미래의 점처럼 보이는 빛줄기 같은 생각.

뭐, 그런 것들.


나는 아직 먼 것 같다.

지금도 뒤죽박죽한 머리속을 한 줌도 정리하지 못하는 걸 보면.


멀게 느껴진다. 모든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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