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13

(25.11.22)

by 우리 아빠

오늘은 내가 몸이 좋지 않았다.

어제부터 간간히 나던 기침은 오늘 와서 더 심해졌고,

콧물까지 더해져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주말 아침이 되면 야심차게 아기에게 써먹으려 했던 활동들이 있었지만,

얼른 몸이 나아야 한다는 와이프의 말에 병원을 먼저 다녀오게 되었다.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그런지 병원엔 대기 환자가 많았고,

점심을 먹기 직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 하려던 활동은 '포인팅과 선택하기'였다.


반찬통에 뻥튀기와 김을 잘게 잘라 넣어놓고 우리에게 얘기한다.


"우리야! 뻥튀기 먹고 싶어? 아니면 김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걸 얘기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걸 줄게."


우리가 얘기한다.


"뻥튀기 먹고 싶어!"

(나) "우리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얘기해야지!"


(아기) "뻥튀기 먹고싶어! 뻥튀기 주세요.~"


한두 번 정도의 완벽한 성공이 있었지만,

이내 우리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어쩌면 자폐 스펙트럼은 한순간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곧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방울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준비한(?) 활동을 마친 후

점심을 먹고 감통수업을 하러 발달센터로 향했다.


오늘의 감통 수업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수업 후 선생님께선 많은 칭찬과 고무적인 얘기들을 해주셨다.


"우리가 오늘은 준비한 활동을 다 참여해 주었어요!"

"처음보다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업을 마친 후에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다음 주로 다가온 타 병원 소아정신과 진료에 대한 의논과,

아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두 분의 질 높은 상호작용,

그리고 육아의 고단함을 조금은 덜어보고자 하는 복합적인 이유들이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상호작용을 하려 노력했다.


"우리야 ! 손~ 무릎!" (따라하는 아기)

"손~ 머리!, 손~ 발!, 손~ 어꺠!, 손~ 아빠 어깨!"

(모두 성공! 동작과 말까지 따라 하는 아기.)


이 활동은 우리를 착석시키고 집중시키기 위해 '손, 무릎!'만을 몇 번 시도했는데,

이내 여러 가지 신체 부위도 가능해져 시간이 날 때마다 시도해보고 있다.

성공률도 높아 내 스스로 신난다는 이유도 있다.


"우리야 이번엔 숫자!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이일~ 이이~ 사암~ 사아아~ 오우~ "


우리는 손가락 숫자 세기도 거의 성공한다.

1부터 10까지, 우리 아기가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또 그런 모습들에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는 걱정이 앞섰나 보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와이프에게 했던 얘기란다.


"우리 아빠가 너무 조급해 하는 것 같은데, 니가 옆에서 잘 조절해줘야겠다."

"우리 아빠도 불안하니까 그런 걸 거야. 좀 걔가 예민하긴 해."


그런 얘기를 했던 엄마, 아빠는 카페에 아기를 데리고 가 빵을 함께 먹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태워주며 우리의 웃는 모습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결국 우리 아기를 많이 웃게 해주자고 다짐했었는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아기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고 싶은 건데.

오늘 하루 나를 향해 불어오는 아기의 웃음들을 많이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요즘 자주보는 '지니스펙트럼'이라는 유튜브를 보았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남자 자폐아이를 키우시는 분인데,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떠난 브이로그가 업로드되어 있었다.


저 분에게도 얼마나 많은 힘듦과 노력들이 있으셨을까.

하지만 오늘 영상에 둘은 그저 평온하고 온화해 보였고,

영상에 살짝씩 드러나는 어려움들도 보였지만

행복해 보이고 따뜻해 보였다.


아이의 행동을 억지스럽게 고치려고도,

그렇다고 포기한 모습도 아닌 '진짜 엄마'의 모습으로

가을 제주 너머에 묻어 있는 두 모자의 풍경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많이 조급했다.

결국은 오늘 하루 아기와 자주 마주 보며 깔깔 웃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나는 아빠가 아닌 능숙하지도 않은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야, 아빠도 배우는 중인 것 같아."

너의 좋은 아빠가 되어볼게."


"너의 웃음을 많이 보고,

포기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줄게."


"그래도... 우리 예쁜 아기.

내일 상호작용은 다시 또 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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