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3)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엔
생전 그 자리를 찾아볼 수 없던 영상들이 가득하다.
자폐 스펙트럼, 시한부,
뇌병변, 최중증 발달장애, 희귀병, 난치병.
그 어려움을 한가운데서 겪는 사람들의 가벼운 브이로그,
혹은 무겁디무거운 사연이나 다큐들.
아마 우리 아이에게 이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 정말 안타깝다."
스쳐지 나가듯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을 이야기들이
지금은 내 모든 알고리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그런 영상들을 보면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들이 든다.
"아, 저렇게 심각하고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우리 아이 정도의 상태면 정말 감사해야겠다.
그나마 난 다행이구나."
정말 이렇게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꾹꾹 마음을 눌러담아도
어느샌가 삐져나와 버리는,
죄책감 가득한 감정들.
이게 솔직한 나의 심정인가 싶을 때가 많다.
사실 난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괜찮다며 합리화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쥐기 위해
아둥바둥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이지,
사실 난 두렵다.
우리 아기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결국엔 자립하지 못힌 아이와
그 모습에 행복하지 못한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마주하게 될까 봐 무섭다.
여러 좋은 신호들과 모습들이 보이지만
아직은 상호작용적인 대화가 되지 못하고,
지연 반향어를 계속해서 내뱉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결국엔 괜찮아질 거야.'
아니, '괜찮아지지 않더라도 내가 담아내고야 말 거야.'
굳게 걸어 잠근 다짐들이
조금씩 흔들리다
마침내 무너질까 식은땀이 난다.
그 와중에 우리 아기가 꺄르르 웃을 때면
그게 또 왜 이리 예쁜지.
금세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아져
모든 걱정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했다.
요즘 틈이 날 때마다 우리 아기에게 하고 있는 노력은
글자를 알려주는 일이다.
우리아기는 암기력이 좋고,
타인과 학습하는 상호작용적인 측면이 끝내 충분히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정한다면
결국 아이의 세상을 넓히는 가장 좋은 통로는
글자를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짧은 지식과 서투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찾아낸 수많은 지푸라기에
일단은 움켜쥐어 보려 한다.
처음 "글자를 빨리 알려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이 블록들을 구매했고, 그 효과를 꽤 톡톡히 보고 있다.
아기는 이 블록들을 모두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숫자는 한 자릿수를 넘어 10, 11, 12...19까지
모두 조합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글도 ㄱ부터 ㅎ까지,
그리고 ㅏ,ㅑ,ㅓ,ㅕ,ㅗ,ㅛ 모두 소리 내어 읽는다.
(물론 자음과 모음을 합치는 단계까지는 아직이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지푸라기는
훗날 나의 불안을 풀어 줄 작은 열쇠가 되어 줄까.
지금 이 기록들이
"그래도 아빠가 널 위해 이렇게 노력했었어."
웃으며 우리 딸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증거들이 되어주려나.
우리아기는 지금
옆방에서 와이프와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밖에는 눈이 오고,
나는 오늘의 감정들과 기록들을 정리하며
하루 동안 뭉쳐 있던 복잡함을 풀어 놓는다.
그리고,
무서워하지 않아야겠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너는 이렇게 예쁜데.
내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