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34

(26.01.31)

by 우리 아빠


"여보세요."


"네, 여기 oo병원입니다. (우리의 자폐진단을 내려준 대학병원)"


"네, 무슨 일이시죠?"


"아버님, 우리가 27년 2월에 자폐 관련 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지금 취소 자리가 나서 바로 진행이 가능하시거든요."


"아... 네. 조금 고민해보고... 아내랑도 상의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근데 아버님, 자리가 바로 다 차버릴 수도 있어서,

오늘 오후 3시 이전까지 답변 가능하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아내에게 바로 상황을 전달했고

역시 조금만 고민해보자며 통화를 마쳤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굵직하게 마음을 파고든 건

지난 11월, 처음 아기의 진단을 들었던 진료실의 풍경이었다.


"아버님!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지금 현재 자폐 스펙트럼이고요. 바로 F코드 드릴 거에요."


"내년 5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리고 내앞에 내팽개치듯 주어졌던

'자폐 스펙트럼'이 적혀있는 조그마한 안내 팜플렛.


그 이후로 많은 생각을 정리했고,

상황을 받아들이며

다시 정돈된 일상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 믿었는데,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하루가 온종일 흔들리고 말았다.


'우리가 어떤 상태이든

내가 그걸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은 기어코 안착해 낸 도착점이 아니라

언젠간 도달하고자 꿈꾸는 이상향이었나 보다.


우리의 어려움을 정말 온전히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 상황을 별일 아닌 듯 넘기고

실질적인 선택만을 고민 없이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현재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4살이면 졸업이라,

내년이면 새로 다니게 될 유치원을 선택해야 한다.


아기의 발달이 어ㅣ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특교자(특수교육대상자)를 신청하려 준비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폐검사(ADOS, CARS등)의 결과지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


"그 자폐 검사라는 게 개월 수가 좀 지나서 발달이 오른 뒤에 하면

결과가 또 바뀔 수도 있데.

원래대로 27년에 받을까 봐.

그때 또 우리 아기 발달 상태가 어떨지 모르잖아."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했고,

아내는 동의했다.


물론 저 말에 거짓은 없지만

그 너머 어딘가에는 숨길 수 없는 나의 불안이 아직 진하게 서려 있다.


왠지

저 검사에서 나오는 수치들이

그리고 결과들이

우리 아기의 '낙인'이 될 것 같은

그 알 수 없고 절망적인 기분.


아직 나는

온전히 우리 아기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병원엔 예정된 5월에 진료를 본 후

다시 취소 자리를 부탁드리겠다 말씀드렸는데,

사실 완벽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지금이라도 빨리 검사를 받는 게 나으려나.

아닌가.

어차피 자폐 스펙트럼임을 인지하고 여러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

굳이 깊게 패인 상처를 더욱 긁어내리는 듯한 이 행동이 맞는걸까.


아...

아닌가


결국 검사의 결과는

우리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무기가 될 수도 있을텐데,


그저 내 연약한 마음만으로,

겁을 집어먹은 비루한 감정으로,


우리 아기에게 바람직한 선택들을 내팽개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

율동을 곧잘 따라하고 좋아하는 우리를 위해

잠깐씩 보여주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생일 축하 노래가 나왔다.


"우리야, 생일 축하 노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듣기만 해도 울음을 터트렸던 노래.

요즘은 이 노래를 듣고도 괜찮더라는 아내의 말에 불러보았지만,

이내 우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역시.... 얼른 검사를 받고 확실하게 특교자를 받아야 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


우리가 얘기했다.


"생일 축하 노래가 무서웠어."


"생일 축하 노래 무서워."


아닌가...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이렇게 표현을 잘하는데.


여러모로

갈팡질팡하는 어제오늘.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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