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9)
우리 딸이 아주 신생아일 때부터
깊은 밤 잠이 들면 나는 귀를 쫑긋 세워 아기의 콧잔등에 귀를 대고
포근하고 동그랗게 불어오는 숨소리를 확인했다.
아마 우리 딸을 담고 있는 그 숨소리는 변함이 없었을 테지.
내가 새로 우리 아기를 알게 된 것뿐이다.
그 소중하고 갸륵한 숨소리들을
매일 밤 평안하고 평화롭게 담아내는 삶을 살아야겠다며
마음을 정리하고, 다짐하며, 다스리는 중이다.
우리 아기의 자폐를 알게 된 후
내가 와이프를 제외하고 의지한 곳은 두 곳이다.
'부모님과 하나님'
지금껏 내 삶을 지탱하고 버티게 해준 같은 크기의 두 이름이다.
부모님께는 자폐를 진단받은 바로 다음 날, 출근 전 직접 찾아가 말씀드렸다.
생각보다 담담하신 표정으로 나를 위로해 주셨고,
그것이 내가 부모님을 먼저 찾은 이유이다.
(그다음 날 아빠는 생전 가지 않던 새벽기도에 가서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냈다고 하셨다.)
우리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지금은 전우처럼 굳게 마음을 다잡는 내 와이프도
언젠가는 지치는 날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들을 지금부터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마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 아기가 같이 있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여 걸리는 거리를
부모님은 매일 와주시겠노라 말씀해 주셨고,
와이프도 우리 아기가 여러 어른들과의 상호작용이 절실하며
본인 역시 체력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나의 생각에 동의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
오늘 아기를 데리고, 유아부에 출석만 하던 교회에 교인으로 등록했다.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소위 말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교회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동으로 버텨낸 삶의 여러 순간들'과
'머리로는 받아들였던 세상의 정답은 교회'라는 것.
(물론 순전한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헐렁한 옷을 입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터벅터벅 그래도 회개를 해야지,
겉만 십자가 모양을 한 깃털 같은 신앙으로 살았다.
(겉이 십자가 모양이었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긴 하다.)
그런 내게 내리신 벌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내리시지, 왜 우리 아기에게...
아... 그게 벌을 내리는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이셨을까.
근데 이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아기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알고 있는 신께선 의도와 계획이 있으시다는데...
난 그 무엇도 알 수 없어 빌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빌어볼 생각이다.
물론 그 최선조차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우리 아이의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게라도 해 달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
매달리고 가슴 아파하며 겸손해질 생각이다.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오늘도 아기의 콧잔등에 코를 대고
그 앙증맞은 숨을 확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생각들과 마음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기도한다.
오늘도 깊은 잠을 허락해 주세요.
우리 아기와 와이프가 내일도 웃게 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