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우리 회사는 빠르면 10년 이내, 길어도 20년 이내엔 회사가 사라지거나, 엄청난 규모의 축소가 진행될 것 같다. 코로나를 거치며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맞이하였지만 회사는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단 우리회사만 이런 상태는 아닐 것이다.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그에 맞게 체격도 체질도 빠르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체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고 체질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자꾸 때려 넣어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비우기를 먼저 해야 하는데 채우기를 먼저 한다. 곪아 터진 상처를 도려내야 하는데 그 위로 다른 살을 덕지덕지 붙인다.
그 모든 방향성에 맞춰 손과 발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게 나의 포지션이다. 나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철저히 회사의 방향성에 맞게 활용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설사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정반대의 방향일지라도, '회사에서의 나'는 '고용된 일꾼'이기에 나의 자존심, 자아, 생각을 철저히 분리하고자 노력한다. 출근할 때 간과 쓸개는 집에 두고 사무실로 간다.
문제상황이 닥치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생각해내고 성공가능성이 낮더라도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실행한다. 그런데 상사에게 이런 소릴 듣는다.
"뭐 잘한 거라고 보고를 하나요?"
'진짜 나'로서 화가 치밀어오르고 급기야 동기 상실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런 날엔 집에 돌아와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응어리가 흩어지지 않는다. 그 상태로 책상에 앉아 생각한다. 나도 나의 후배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인간은 높이 올라갈수록 어떤 것을 잊어버리는지.
#1 경청
가장 먼저 잊는 것이 경청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부서원이었을 때 부서장의 말을 듣지 않고 말을 끊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갔는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는 대부분이 부서원의 말은 '아직은 부족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는 무의식으로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말을 끊고 부서장은 지시할 말만 한다.
#2 인정
일이 잘 진행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담당자는 대역 죄인이 된다. 칭찬과 인정의 말은 결여되어 있고 지적은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날카롭게 짚어낸다.
#3 사과
잘못된 지시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도 사과의 말은커녕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 사과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기에 애써 외면한다.
위에서 나열한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은 높이 올라갈수록, 권력이 조금이라도 생길라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나도 부서장으로서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후회하고 반성하며 매일매일 더 좋은 리더가 되려고 이해하려 하고 인내하려 한다. 그래도 완벽한 리더는 될 수 없다. 최소한 우리는 같이 일하는 성인으로서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 생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온전히 상대방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고민과 노력을 알 수가 없다. 결과가 100점이 아니더라고 적어도 그 사람이 기울였을 노력에 대한 격려와 인정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