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부인과 분만일기 1
튼튼이(현재:제이슨)의 예정일은 9월 28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9월 23일이었다.
예정일을 처음 들었을 때, 잘 하면 결혼기념일이 아이의 생일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심 결혼기념일만은 피해주는 효자이길 바라기도 했다. 튼튼이는 그런 엄마의 바람을 기가 막히게 들어주었다. 결혼기념일 바로 다음날인 9월 24일 정오에 태어나 주었다. 대신 그 해 결혼기념일 하루 종일 엄마가 진통을 하게 했지만 말이다.
임신 39주차,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 분만 전 마지막일지도 모를 체크업을 다녀왔다. 이 날도 역시(?) 초음파 화면을 통해 아기를 보진 못했지만, 여전히 도플러로 건강히 뛰고 있는 아기의 심장박동을 확인했고, 줄자로 내 배둘레를 쟀다. 모든건 정상이었고, 내진을 통해 어느정도 내 몸이 출산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1cm 자궁이 열려있었고, 아마도 오늘 내진을 했으니, 분만이 촉진되어 빠르면 하루 이틀 안에 진통이 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 진통이 5분 간격이내로 진행되고, 양수가 터지거나 할 경우 분만병원으로 바로 연락하라고 했다.
“내일 결혼기념일인데 뭐 먹을까?” 남편의 물음에 나의 대답은 ”탕수육이랑 짜장면“이었다. 출산 전 둘이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결혼기념일이었지만, 분만을 코앞에 두고 파인다이닝 같은 곳에서 분위기를 잡을 순 없었다. 칼질하다 양수터지는 상상만으로도 괴로웠다. 소소하지만, 남편과 둘이 좋아하는 한국식 중식당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으며 보내기로 했다. 워낙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여유있게 먹을 생각에 설렐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설렘은 아침이 채 오기전인 새벽부터 끙끙 앓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평생 지긋지긋하게 겪어왔던 생리통과 비슷한 듯 더 아픈 듯한 싸르르한 아랫배통증이 아침 내내 지속됐다. 가진통인가 싶다가도 분만의 징후라고 보이는 일명 ‘이슬’이라하는 소량의 피비침이 생기며 이건 빼박진통이라고 확신했다. ‘하 결국 우리 아기는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에 생일을 맞이하려는 구나’ 왠지 모를 아쉬움을 애써 뒤로 하고, 언제라도 분만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게 준비물을 마지막으로 챙겨보니 그제서야 미친듯이 떨렸다. “아기가 정말 나오는 건가? 이제 진짜 내 삶은 완전히 바뀌겠구나”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미리 받아놨던 진통어플에 주기를 체크해보는데 그날 오후가 다 지나가도록 주기가 30분에서 줄지 않았다. 보통 10-15분 단위로 주기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건 진짜 진통이 아닌걸까? 가진통도 이렇게 찐으로 오는 사람도 있나?
사르르한 아픔을 참으며, 병원에 언제 가게 될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는 하루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애를 낳는 지경일 것 같았다. 진통 오는 날 쫄쫄 굶고 갔다가는 힘이 없어서 애 낳다가 골병 각이기 때문에 배가 아파도 꾹 참고 마지막 고칼로리 만찬은 필수라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났다. 원래의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집에 갓 들어온 남편에게 당당히 말했다. “탕수육이랑 짜장면 픽업하러 가자“
여전히 20분에 한번씩 찌르르 찌르는 진통인지 가진 통인지 모를 통증을 느끼며 그토록 먹고파 했던 음식을 픽업하고, 중식당 옆 한국 베이커리에서 한국식 생크림 케이크도 한 조각 사왔다. 진통에 가려 잊혀진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번씩 배를 움켜잡을 수 밖에 없었지만 맛있게 음식들과 케익을 싹싹 비웠다. 그런데 밤이 다 지나가도록 진통주기는 짧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며칠내내 진통하는 사람도 있다더니, 그게 바로 나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