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죄인이 될 뻔 했네
나는 한국에서 오랜기간 차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드라이브를 떠나곤 했을 정도로 운전을 즐겨했다. 넓디 넓은 땅 미국에서도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위를 달리며 종종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가까운 마트도 기본 10분은 차로 이동해야만 하는 미국에서의 드라이빙은 본투비 드라이버인 나에게 일종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였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직접 운전을 해서 이곳 저곳 아이와 다닐 계획이었다.
운전을 못하면 생활이 힘든 미국에서, 아기 카시트는 아기의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아이템이다. 우리 부부는 유모차보다도 먼저 어떤 카시트를 살지 오랜기간 고민했다. 돌정도 까지 쓰는, 일명 바구니 카시트라 불리는 인펀트 카시트부터, 토들러 카시트(컨버터블 카시트)등등 아기의 월령 및 신체나이에 따른 카시트도 각각 달라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와중에 운이 좋게도, 친한 부부에게 그들의 첫째아들이 6개월간 쓰고 졸업한 인펀트 카시트를 물려받게 되었다. 좋은 브랜드의 가격대가 꽤 있는 모델이었는데, 상태도 거의 새상품같아서 감사하게 받았다. 미국은 출산 후 산부인과 퇴원시, 차에 카시트가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으면 퇴원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가족도 퇴원할 때, 병실에서부터 차까지 담당 간호사의 감시아닌 감시인 에스코트를 받으며 이동했다. 간호사가 우리 카시트 장착 여부를 확인하고, 아이를 제대로 안전하게 태웠는지 체크한 후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카시트을 받아 분해하여 구석구석 세탁과 소독을 한 후에 유튜브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차에 설치했다.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이제 아기가 태어나도 완벽하게 우리집으로 모시고 오기만 된다고 생각했다. 38주차에 산부인과 체크업을 갔을 때, 또 우리의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산부인과에서 나눠준 출산 전 해야하는 to-do list 에 “Carseat inspection” 이라고 써있었다. 당황하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랴부랴 알아보니 담당하는 기관에서 아기를 위한 카시트가 안전이나 기능에 문제가 없는 안전한 제품인지, 제대로 차에 설치되었는지, 우리 부부가 아기를 카시트에 올바르게 태울 수 있는 지 등을 ”검사“받아야 한다고 했다. 일명 “carseat inspection”
아뿔싸. 한숨만 크게 잘못쉬어도 아기가 튀어나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던 막달이었다. 느린 행정처리에 항상 답답해하던 해외살이인지라 (주토피아의 나무늘보정말 찰떡비유) 당장 아기 출산 전에 할 수 있을지 말그대로 완전 쫄았다. 천만다행히도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에 빠르게 예약을 했다. 39주차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경찰서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니, 한 코너에서 백발의 할머니 경찰관 한 분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congratulations” 인사와 함께, 미국에서는 응당 통과해야하는(?) small talk의 시간 후 inspection이 시작되었다. 먼저 우리 설치된 우리 카시트를 분해하여 꺼낸 후, 카시트와 자동차좌석을 이어주는 베이스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셨다. 다음으로 꺼낸 카시트를 데스크 위에 올려놓고 검사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카시트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Did you get the new one?” 새 상품인지를 물으시길래 솔직하게 물려받은 것이라 대답했다. ”No, we got the used one from one of our friends.” 그 분은 표정을 한번 찡그린채 카시트의 벨트가 완전 새 것보다 느슨하다고 했다.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나, 항상 너희가 보는 것 보다도 더 타이트하게 조여야 아기가 안전하게 탑승한 것이라고 말하셨다. infant carseat은 중고로 쓰는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사실은 다들 간과한다면서 재차 안전을 기해야할 것을 강조해주셨다. 중고 카시트 이슈(?)는 주의만 받고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 부부가 카시트를 제대로 장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시겠다하셨다. 집에서 열심히 연습한 남편이 당당하게 시작하려고 하자 그 분은, 남편을 막아선 채 얘기하셨다. “Mom should do it”
나 지금 배가 이렇게나 나와있는데 카시트를 들고 설치하라는 건가?? 당황한 채 “me?” 라고 묻는 나에게 단호하게 ”Yes, I’m sure you will have much more time with your baby. So you should know exactly how to do this” 라고 하셨다.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애기가 나올 것 같았지만, 내 배 보다 큰 바구니 카시트를 들었다. 잘할 리 없었다. 해본 적이 없으니..
할머니 경찰관 분은 한숨을 크게 쉬며 스텝 하나하나씩 알려주셨다. 이렇게 넣어서 장착을 해야하고, 또 분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기 인형을 상대로 태우는 법까지 열번 이상 연습시킨 후에야 비로소 그 분은 교육아닌 교육을 마무리한다고 하셨다.
마지막까지 카시트의 올바른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또 강조하시고 나니 무려 시간은 한시간이나 지난 후 였다. 그저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했었는데, 까딱하다가는 카시트도 없이 산부인과에 갔다가 애도 못 데리고 나왔을 판이었다. 미국에 사는동안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허술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아기와 안전에 대한 문제만은 100%, 500% 진지하게 대하는 걸 보고 역시 괜히 선진국이라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무 생각없이 갔다가 실-컷 눈치보고 예상치못하게 꾸중도 많이 들어서 주눅 들뻔 했던 30대 동양인 부부는, 우리의 아기를 향한 미국 사회의 케어링 시스템에 또 한번 신뢰를 얻었다. 그래 우리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