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시간

by 맘약

알맞은 '내 일'을 찾기 위해 나는 수많은 시도를 하였다. 나에겐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 우선이었고, 그러면서도 적절한 경제적 성과가 필요했다. 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안전한 울타리(=직장)는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따라서 보통의 직장인에게 '사이드 프로젝트'나 '부업'정도가 될만한 일이, 나에게는 온전한 직업이 되어야 했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해내리란 명목 아래,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패시브 인컴의 수익을 꿈꿨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20대의 젊은이가 아니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아줌마. '진정 나를 위한, 내가 원하는, 나에게 알맞은 일을 찾을 것'이라 말은 했지만, 어떤 가치를 좇는다기 보다는 당장의 막연함과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점점 더 현실적인 수입원만 찾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이전에 했던 '취준'에 비해 다소 쉽고 소박한 직업 찾기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시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은 결코 '소박하지 않은 꿈'이었다.


나는 적절한 내 일을 찾기 위해 많은 정보에 기웃거렸다. 이런 내 맘을 꿰뚫는 온라인 세상은 어느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을 돌아다니더라도 나에게 '사이드 프로젝트, 부업, 부캐 만들기'를 소개하는 광고를 펼쳤다. 나는 그런 광고들을 마주할 때마다 비싼 수업료에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엔 '이번엔 정말 잘 될 거야'라는 기대를 안고 강의나 전자책을 결제하였다.



'PDF 전자책 작가'의 삶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자영업자'의 삶

'공구를 하는 인스타그램 육아 인플루언서'의 삶

'아이와의 여행을 다루는 블로거'의 삶


이들이 내가 했던 다양한 시도&삽질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누군가는 지금이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라 말했고 누군가는 이러한 일로 정말 떼돈을 벌고 있으니, 나 또한 어렵지 않게 잘 해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했지만, 막상 어떤 '특정 분야'에 뛰어들어보면 나는 기초나 소스가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그리고 실천력도 부족했다.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매번 솔깃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러다 진짜 대박 나면 어떡하지?'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일'에 진정한 관심이나 재능이 없었다. 때문에 끈기가 없었고, 좀처럼 빠르게 오지 않는 반응에 곧 지쳐버렸다. (어쩌면 파티 플로리스트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매우 빠르고 열정적인 소비자의 반응이 왔던 건, 내 실력이 좋아서라기 보다 '초심자의 행운'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괜한 시도들을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내가 지금 헤매고 있다고, 제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고' 주변에 말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요즘 무얼 하고 있냐'는 질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늘 ‘무언가를 열심히 잘하고 있는 체’ 하였다.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가는 것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 않는 것도 모두 싫었다. 그래서 또 헤맸다. '과연 어떤 땅에 진짜 금이 있을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간. 하지만 조금씩 파다가는 '여기도 아닌 것 같다'며 나는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방황은 계속 되었다.



가끔. 아주 가끔. 아주아주 작은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정말 작았다. 경제적인 것으로만 따지면, 방황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래 잘하던 일을 했을 때 훨씬 더 쉽게 그리고 빨리 얻을 수 있는 성과들이었다. 처음엔 이 모든 도전을 정말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점점 더 잇단 실패와 아주 작은 성과들만 마주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마음도 아팠다. 도대체 무엇을 이루려 그렇게, 서로 다투거나 실망하거나 상처를 줬던가. 내 욕심으로 인한 남편의 희생에 미안함이 커졌다.


'나는 아직 젊은 나이이며 지금까지 시도한 것보다 시도하지 않은 게 많고 딱 알맞은 길을 찾지 못했을 뿐 내가 정말 제 길을 찾으면 번듯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육아도 살림도 내 일도 잘하는 멋진 내가 될 수 있다.’며 열심히 자신을 지지하고 북돋았지만 이내 현실을 직시하고 회의를 느꼈다. '성장하는 삶, 나를 찾기 위한 삶의 과정'이라며 스스로에게 바치는 위로에도 나는 곧 마음이 쓰렸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육아도 자기 발전도 모두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일,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좋은 엄마이자 아내이며 딸,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내가 될 수 있을까?’ 바람은 컸지만 모든 면에서 현재의 나는 참 어설펐다.



그런데 역시, 인생에 버릴 만한 경험은 없나 보다. '어느 보잘것없는 경험'들도 다 나를 한 뼘 더 일으키는 흙 한 줌이 되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매일매일의 고민과 시도를 통해 작은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경험들은 틀 안의 나를 진정 바깥세상으로 이끌어주는 티끌만 한 전진이었다. 한 번도 대단한 걸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 덕에 내 생각의 너비와 깊이가 이전보다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때때로 불평을 하다가도 '일반적인 모범생의 삶에서 긍지를 느끼던 과거의 나'가, 이제는 진심으로 교과서 밖 다양한 삶과 세상에 관심이 생긴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은, 스스로를 가슴 뛰는 청춘이라 칭하며 많은 꿈을 꾸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 노력했지만, 돌아가야 할 나의 자리를 항상 의식하며 허무함을 느끼곤 했던 20대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인생의 방황과 성장’이었다.


그리고 그 방황과 성장의 길에서, 마침내 나는 책을 만났다.






내 이름을 찾고 싶다며 노력한 그 크고 작은 시도와 실패의 시간이, 어쩌면 나를 삶의 본질로 돌아와 '삶의 보고인 책을 만나고 그 안에 기록된 더 많은 생각과 인생'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끈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뭐라도 찾고 뭐라고 해보고자 방황하던 어느 날,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해 샌드위치 집으로 향하던 중 그 길에 있는 작은 구립 도서관을 발견하였다. 애초에 도서관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 1월, 나는 그 작은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청소년 도서 위주로 채워진 밝은 도서관이었다. 통창엔 햇살이 충분히 들었고 곳곳엔 화분이 많았다. 간단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책상과 의자를 보니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서가에는 형형색색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육아서가로 향했다.


사실 나의 본캐는 엄마였다. 매일을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여 나 자신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아이를 향한 시선과 노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창 '발도르프'라는 교육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때, 나는 표지에 발도르프라는 단어가 적힌 책을 찾았고 그 작은 초록색 책을 대출했다. 그리고는 책에, 빠르고 깊게 빠졌다.



책의 힘은 놀라웠다. 마침 이 책의 이야기가 나에게 딱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마주한 '책의 질감과 호흡'이 나에게 맞았기 때문일까.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그 수많은 발버둥 중에,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아날로그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학창 시절 이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생 시절 이후 종이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종이책의 울림과 나에게 적절한 시간을 주는 그 여유로움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읽고 생각하고 읽고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 느낌이었다. 조급함에서 벗어나 천천히 긴 호흡을 해보았다. 그리고 책에서 알게 된 지혜를 삶에 적용시켜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작은 변화를 느꼈다.


두 가지의 작은 변화였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만난 책이 육아서였던 덕분에, 나의 첫 번째 변화는 '아이를 향한 내 생각과 자세'였다. 일상 속 아이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좀 더 다정하고 따뜻한, 그리고 아이를 그 자체로 오롯이 이해하는 어른스러운 마음과 시선과 자세였다. 이것이야 말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공간에서 생각은 다른 곳을 향하고, 같은 시간 휴대폰과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일과 육아를 모두 잘하고 싶다 생각하는 건 모두 내 욕심인 것 같았다. 우선은 지금의 이 사랑스러운 아이와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향해서도 내 욕심을 부리기보다 이 아이의 기질과 발달의 과정들을 이해하고, 우리 아이를 있는 그대로 그저 '내 옆에 있다는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변화였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책을 더 많이, 정말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의 지혜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왜 이제야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그래도 지금이라도 책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러한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 속에 잠깐 언급된 책, 혹은 읽고 있는 책의 작가나 주제에 대해 계속 호기심이 생겼고, 그렇게 나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책을 읽었다. 어느 날은 유명인의 추천에 의해, 어느 날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기에, 어느 날은 그냥 내 눈과 손에 와닿아서 다양한 책을 읽어 나갔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슷한, 평소와 같은 엄마의 삶'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을 다양한 삶과 지혜를 만났다. 책에서 만난 지혜가 잊히는 게 아쉬워 차츰차츰 기록도 시작했다. 좋은 구절을 남기고 그 책을 읽은 당시의 내 생각도 기억하고 붙잡고 싶었다. 어설프고 설지만 이 또한, 헤매고 경험하고 성장하는 30대 중반 나의 삶이었다.



그동안 시도했던 다양한 일에서는, 온라인 세상에서 만난 어쩐지 이미 너무 '잘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집중했고, 내게 부족한 절대적인 시간과 재능과 끈기를 탓했다. 그런데 이 종이의 세상은 조금 달랐다. '책을 읽고 가까이하며 기억할만한 글과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엄마인 내게도 조금은 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일지라도 내가 이런 것들을 해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오랜만에 내게 뿌듯함과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엄마로서의 나도, 나로서의 나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소박한 기쁨이 찾아왔다. 전혀, 돈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는 일이 아니었기에 패시브 인컴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내면을 채워가는 나의 하루가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나를 위한 어떤 일'을 찾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도 ‘나의 삽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당분간은 '책의 세계'를 계속 팔 것 같다. 그렇게. '엄마의 책 읽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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