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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ul 22. 2023

적당한가요

'적당히' 좀 해요.

위에서 보시기 적당한가요?


 며칠을 연이어 퍼붓는 장맛비인지 폭우인지 전국을 물웅덩이로 만들 심산인 듯한 하늘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 본다. 하늘이 뭔 죄이랴마는 그래도 어디에라도 하소연할 구멍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소연이 절박할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오히려 협박조가 됨을 알지 않은가. 김해 지역 신화 속 '구지가' 노래에서 왕을 보내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는 거북이에 대한 간절한 협박처럼. 물론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이자, 의도 확대의 오류임을 잘 안다. 인류의 지나친 오만과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를 훼손한 원인의 결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안다. 결코 하느님의 징벌 의도가 아님도 알지만 뉴스 여기저기 안타까운 수해 소식은 하늘에다 책임 전가하는 못난이가 되었다. 전국적인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난 저수지와 말라버린 농토를 보며 제발 비가 내리기를 바라고, 찔끔거리는 비를 보며 원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이런 국지성 폭우 물난리로 돌아올 줄이야.

 '적당히'를 모르는 이 비를 보며 우리네 삶과 닮아 있음을 느낀다. '적당하다'는 건 필요에 맞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알맞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우리 삶이 모두에게 어디 적당하던가. 어딘가는 차고 넘치며 또 어딘가는 한없이 모자라지 않은가. 모자람은 결핍을 의미하고, 결핍은 서러움과 외로움을 동반하기 쉽다. 남들은 쉽게도 얻는 직장이, 집이, 혹은 애인이 없는 이들에게 결핍은 삶의 무력감과 함께 본인의 능력 부족을 탓하는 자책으로 이어지며 서럽다. 차라리 노력이 부족하다 하면 더 하면 될 것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은 항상 결핍으로 남아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 오지 않는 비에 쩍쩍 갈라진 농토와 말라 비틀어진 작물들을 바라보는 농부의 서러운 심정을 생각해 보라. 결핍은 반드시 메워야 풍성해진다.


 한 면만 쑥쑥 쌓아가면 게임이 금방 끝나버리는 테트리스처럼 빈 곳을 찾아 차곡차곡 채워가야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결핍은 반드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비어 있는 이들의 아픔을 볼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배려도 필요하다. 빼고 더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풍족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특히나 '과유불급'의 진리를 느낀다. 도무지 아쉬울 게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결코 차고 넘치는 것이 좋지만은 않음을 매년 학기말이 되면 실감한다. 학년 진급을 하면서 개인 사물함과 서랍 등 교실 짐 정리를 시키며 남은 물건 없이 가져가도록 며칠 동안 강조 전달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빠진 빈 교실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남아돈다. 펜이나 노트 정도가 아니라, 옷가지부터 가방이나 고가(高價)로 산 수업 재료를 통으로 버리고 가기도 한다. 하긴 청소 시간에 빗자루를 강아지마냥 질질 끌고 다니는 아이 옆에 떨어진 백 원 동전을 주워라 했더니, 제 것 아니라며 필요 없다고 그냥 두는 아이들이니. 핸드폰 산 지 일 년 정도 지나 구종이 되었다고 잃어버려야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아이들의 풍족이 가져다 준 잘못된 사고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 차고 넘치는 물건이라 아끼지 않는 사고는 사람에게도 이어져 도무지 사람 귀한 줄도 잘 모른다. 다시 사면 그만이라는 물건에 대한 생각이 평생 지기를 만들지 못하고, 금방 사귀고 금방 헤어지는 단발성 만남을 이어간다. 


 아이들만 그러하랴. 그저 생긴 습관일 리가 없다. 집에서부터 자기 것이란 물건들을 부족함 없이 제공해 주는 부모가 있다. 부모들의 사랑도 차고 넘치는 경우가 많다. 귀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빚은 지나친 간섭과 애착은 내 자식에게만 머물러 작은 손해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따지려 든다. 그로 인해 다른 이에게 미치는, 아니 결국 제 아이에게 되돌아 올 상처를 보지 못한다. 넘치는 사랑이 독이 되기도 함을 본다. 결국 작은 일에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지나치고 왜곡된 일방향 애정은 다른 한 쪽의 고통이 됨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결국 비는 그치고 우렁찬 매미 울음과 햇빛 속에 백곡은 여물어 갈 것이다. 생각지 못한 또다른 시련이 없을 리 없고, 종종 적당치 못한 차별의 비는 올 것이다. 그러함에도 가을의 결실을 향해 열심히 계절의 시간이 흐르듯, 우리네 삶도 다시 제자리 찾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너무 모자라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은 서로가 적당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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