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장애시민의 광장 투쟁기-<장애시민 불복종>
자칭 '못된' 장애인의 시민권 투쟁기
무심결에 당연시했던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두 발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직장에서 힘은 들지만 맡은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일상들. 이런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있음을, 그런 일상을 누리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 있음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나의 평화로운 일상이 사실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장애인들의 차별철폐 휠체어 시위에 비난하는 이들에게 침묵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 책은 어린 시절 병으로 인한 후천적 지체장애인이자 인권활동가인 변재원 작가의 장애 운동 현장 활동가로서 누빈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글이다. 개인적 성공을 바라는 평범한 대한민국 장애 청년으로 엘리트 경력을 쌓으며 일등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인권 활동가이자 장애 시민권 투쟁가가 되어 장애 활동 현장을 누비며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500여일간의 장애 운동 투쟁기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한 인간으로 느끼는 솔직한 두려움과 벅찬 감동, 아픔을 공유하며 써 내려간 글이었다. 때로는 신랄하고 때로는 감정 충만한 그의 탁월한 글재주에 감탄하는 것은 부차적이었고, 그저 한 사람의 일기를 읽어가듯 타인의 삶을 오롯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제1부 탐색의 순간 데모는 왜 하는가1 -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제2부 직면의 순간 데모는 왜 하는가2 - 권력자를 움직이기 위해
제3부 이해의 순간 데모는 왜 하는가3 - 변화를 이끄는 근거가 되기 위해
제4부 연결의 순간 데모는 왜 하는가4 - 세상과 만날 계기를 갖기 위해
<제1부>
민주주의 정치는 그저 자원을 나눠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간 존재를 부정당했던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목소리 없는 이들, 몫 없는 이들이 몫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는 민주주의 위협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번영을 견인하는 힘이다. - p 14
전장연의 장애 인권 보장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작가가 장애운동에 입문하게 된 배경과 첫 실무를 맡았던 경험을 쓰고 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공간에 함께 머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있었던 지난 날을 돌아보게 했다.
<제2부>
사회적 소수자가 그 어떤 전문가가 되어 기술을 취득하거나 명석함을 증명한들, 갈등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밀실 속에서 은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성가신 감각을 일깨울 때 정직한 사회 변화를 꿈꿀 수 있다. -p 76
작가가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숨겨 왔던 본인의 일터를 소개하는 글 중, 함께 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소개글에서 느껴지는 진심 어린 애정과 위로의 글은 진한 감동 그 자체였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이십 여년간 투쟁해 온 이규식 장애인의 이야기에서 비록 본인은 외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기회를 잃을 지라도 다른 이들의 삶은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투쟁 역사를 말한다. 버스 문턱이 낮아지고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돤 것은 위대한 정치가의 업적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의결과였음을 알게 되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제3부>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일 수록 가장 원시적인 수단처럼 보이는 데모가 가장 적극적인 반응성을 견인하는 계기로 활용된다. 거리에 나선 시민이 외치는 목소리는 무작정 정부를 괴롭히는 갈등이 아니라, 변화를 함께 이끌어나가는 협력의 발판이 된다. -p 158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만 하고, 미운 놈이 되어야만 떡 하나라도 겨우 기대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그저 세상이 변하기를 꿈꾸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 내 삶을 잘 챙겨줄 것이라고 과도하게 믿는 마음은 어쩌면 허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p 160
긍정적인 변화는 결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나에게 주어진 부당함을 당당하게 외치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장애인이라고 다를 리가 없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에게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집안에만 있으라 하며 주어진 혜택이나 누리라 강요하는 이는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미래를 보장받았느지.
<제4부>
중증 장애인의 데모는 단지 지배권력과이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로서도 존재한다. 데모 현장에서 집 밖의 하늘, 공기, 바람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중증 장애인들은 거리를 걷고 구호를 외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독립심을 동시에 만끽한다. -p 235
데모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통 통로이며 세상을 뒤쫓는 방법으로 여긴다. 데모하는 장애인들은 선동된 이들도 아니며, 이용당한 이들도 아니며 스스로 투쟁을 이용하는 이들로 부자유한 신체이나 거리에서 사회적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나의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사실 평범한 나의 일상 공간에 그들이 머물 수 없었기에 덜 보인 것 뿐이었다.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바람을 생각지 못하고, 어쩌다 마주치는 그들을 그저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는지. 그들도 온전한 한 인격체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배제되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기본 권리를 갖고자하는 장애인의 시민불복종의 투쟁이 그저 준법성의 한 잣대로만 그들을 평가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인가.
광장으로 나선 '못된' 장애인이라는 변재원의 시민권 투쟁기라는 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히 장애인에 대한 편협된 시각을 알게 되어 부끄러웠고, 그들의 치열하나 용기 있는 투쟁을 알게 되어 고마웠다. 흔한 관용구적인 표현보다는 진심어린 이해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장애시민불복종 #변재원 #창작과비평 #창비서평 #장애인권운동 #차별철페 #독서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