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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an 23. 2024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

누구를 위한 명절

 세월의 반복 속에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이 늘어간다. 굳이'상전벽해'를 인용하지 않아도 예전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를 방문했다가 기억하고 있던 어느 것도 사라지고 없어 황당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장소만 그러하랴. 사용했던 사물 또한 급변하는 시대를 가장 민감하게 보여준다. 골동품  취급 받는 핸드폰이며 시디플레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생활 습관이나 관습에도 적용된다. 차별적 표현이 상당히 고쳐지고 있고, 어딜가나 순서를 지키며 한 줄 서는 모습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또한 단오니 정월대보름이나 한식, 동지 등 세속풍습을 지키며 그에 맞는 음식이나 풍속을 지키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그런 것들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거나 그저 옛것이라는 생각에서 지나치는 것이리라.


 족대명절이라는 설날과 추석 역시 상당히 축소되어 주위에 차례 지내지 않는 가정이 점점 늘고 있다. 유교적 형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본인의 종교와 맞지 않으니 형식은 따르지 않으나 그래도 연휴는 반가운 현대인들은 고향 대신 여행지로 떠난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엄마도 아빠에게 시집오기 전까진  번의 차례며 제사 합하여 일 년에 13번이나 치러야 하는 제례의 무게를 몰랐다 한다. 아직 학생인 시누이와 시동생의 뒷바라지까지 줄을 스무살 아가씨가 어찌 계산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참 가혹한 책임을 떠안게도 한다. 지금에는 결혼에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아빠의 층층 시댁 조건들이 그 당시로선 왠만하면 감당할 누구나의 조건이기도 했다. 


 명절 한 달 전부터 엄마는 차롓상 준비로 분주하다. 얼마나 차이날까 싶어도 굳이 자갈치 수산시장까지 가서 생선을 사야 했고, 부전시장 과일이 얼마나 더 싱싱할 지 모르나 택시도 타지 않고 그 짐을 버스 타고 왔다갔다하는 수고로움은 어린 나에게 그렇게 비효율적일 수가 없었다. 기저기 시장들을 다니며 장만한 차례거리들이 늘어나고 명절이 코앞까지 닥치면 우리 남매들을 데리고 새옷을 사러 간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이름조차 낯선 추석빔이니 설빔을 마련하러 간다.  때가 아니면 온전한 내 옷을 사는 경우가 드무니 우리에겐 귀한 명절이었고 큰 기대를 하게 하는 날이다. 늘 그렇듯 형제 모두가 한 벌씩만 사도 만만찮은 비용이니 원하는 브랜드며 디자인 옷을 사 입는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물려줄 동생이 있는 나로선 제 사이즈 옷을 사 주시지만. 언니는 항상 몇 치수 큰 옷을 접어 입어야했다. 그래도 새옷을 입고 뽐낼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다시 엄마의 주머니로 거진 들어갈 세뱃돈일지언정 덕담과 함께 주어질 귀한 용돈에 그저 들뜨는 명절이었다.


 그믐날에는 방바닥에서 꼬들하게 굳어가는 가래떡을 어슷 써는 엄마 곁에서 쫀득한 떡 꼬다리를 얻어 먹고, 튀긴 쌀과 조청을 섞어 동글게 빚은 강정을 비닐 한가득 툭뚝 던지며, 자면 눈썹 희어진다는 말에 졸린 눈을 비비대던 어린 딸이었다. 추석 보름 전날은 같이 반달 송편을 빚으며 어른들의 온갖 얘기 듣는 게 재미있었다. 송편 예쁘게 빚는다고 예쁜 딸 낳겠다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부끄러운 달밤이었다. 큰 가마솥에 알싸한 솔잎 넣은 송편이 무럭무럭 익어가는 밤, 결국 엄마 옆에서 졸다 잠드는 그런 밤이었다.


 기름진 냄새와 온갖 색색의 음식들과 밤새 시끌벅적했던, 고단하면서도 풍족했던 명절은 이제 어느 별에나 있을지 모르는 옛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차례보다는 가족 여행을, 기름진 명절 음식보다 간단한 외식으로 대체된 옛 명절의 풍경은 아이들의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명절 #아쉬움 #변화 #차례 #추석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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