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나는 참 호기심 많고 발랄한 아가씨였다.
세상이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청춘이었다. 하루가 짧은 나날이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두 눈으로 보고 싶고 두 귀로 듣고 싶은 게 많아 늘 밖으로 쏘다니며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요즘 말로 영락없는 E성향이었다.
고교 시절까지 학교의 틀에, 부모의 울타리에 안도하며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다. 해야하는 것들만 꼼꼼하게 계획대로 이뤄내며 좁은 책상 위에서 기쁨을 찾는 I 성향의 얌전한 여고생이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그간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 너무 많음에 매일이 충격이었고, 매일 알아가는 것들에 두 눈이 어지러울 만큼 신났다.
세상이 얼마나 넖은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아이마냥 밖으로만 싸돌았다. 세상을 글로 배우다가 몸소 익히는 것들은 팔닥팔닥 튀는 생선처럼 날것 그대로 온 몸을 전율하게 했다. 세상을 책으로만 배웠노라 하기에도 사실 부족했다. 책이라기보다는 교과서로만 배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고교 시절은 시험과 시험의 연속이었기에 그저 문제집과 문제집을 오가는, 독서가 아닌 학습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시험과는 무관하게 잡다한 분야의 다른 책을 끼고 읽어대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저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고전을 읽는 것이 교과서 외 독서의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여의치는 않았다.
너는 희한하게 안그래 보이는데, 네 하고싶은 건 다 하더라.
보수적인 부모님에게는 절대 불가했던 외부 단체 활동들을, 언니는 그대로 지키는 장녀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나 나는 나름의 원칙대로 하고픈 것은 부모님 몰래라도 해야했다. 궁금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집안에서만, 부모님의 테두리 안에서만 추측하고 상상력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었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미리 재단하여 그대로 따르라 하신 부모님의 그 판단 기준이 다 옳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대 놓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재주는 없었으며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기에 아예 그 점은 포기하고 있었다.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 엄격한 아빠의 분노 마지노선은 꼭 지켜 드리면서 나름 탈출의 방법을 찾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계속 E로만 살게 하지 않았다. 점차 지쳐가는 나를 지키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듣지 않아도 되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매일 귀를 가득 채웠다. 상대에게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나의 발화는 허공을 떠돌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목적지를 잃은 말들은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나의 내부에 똬리를 틀었다. 그리곤 상처 받은 경험을 들추며 나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기도 했다. 나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해야할 자리가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았고, 그저 잘 들어주는 청자가 되어 갔다. 단체에서 점점 떨어져 나온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영락없는 I가 된 것이다.
밖으로 향하던 나의 활동들은 이제 나 스스로 해내는 활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함께여서 즐겁고 행복했던 일들은 굳이 함께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고, 그 편이 훨씬 알차고 편했다. '편하다'는 감정의 깊은 바닥에는 무료함과 지루함, 혹은 외로움도 가라 앉아 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에서 그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를 혼자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수록 혼자 지낼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나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다. 때론 군중 속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 받고,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보람을 느끼고 싶다. 이런 일에 스트레스나 긴장보다는 잘 해 낸 뒤의 뿌듯한 보상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랜 사회화의 경험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학습시켰다. 혼자서 나에게 주는 소소한 보상이 더 행복감을 준다는 것도 알았고, 오히려 잘못된 결과가 가져다 줄 뒷감당에 몸을 추스리는 소심함을 장착하게 되었다.
원래 I였으나, 사회화로 얻게 된 E인지,
원래 E였으나, 세월 속에 I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의 MBTI 첫 시작 두 글자부터 애매모호하다.
이제는 I같다고 하니 더욱 I가 된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