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 용기
나는 나만의 독립 서사를 지니지 못하고, 집안의 착한 천사나 신데렐라라는 칭호에 익숙해져 버린 옛 여자인 것이다. 경제적 이유이든 일말의 사명감이든 직업인으로 육체적 고뇌를 견디며 일하고도 나는 가정에서 또다시 일방적인 노동 전담을 담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가사와 육아와 생업과 집필의 어정쩡한 경계를 수시로 드나들며 육체와 정신을 혹사하고 있다.
물론 자발적인 나의 선택임에 틀림없다. "결국 언니가 그렇게 만든거야."라고 했던 여동생의 질타에 할 말이 없었다. 가족들 역시 이런 나의 희생을 알고 있고, 미안해하고 감사해하고 있다. 단지 그런 그들에게 내가 적극적으로 개선과 참여를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사랑이라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의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정작 경직된 틀을 깨지 못한 우둔함은 그저 습관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나의 용기와 노력이 결단코 부족했다.
착실하고 가정적이며 경제적 능력까지 갖추어 재산 증식도 척척해 내는 친구들과 그녀의 남편들, 즉 요즘 여자 요즘 남자인 친구들과의 만남은 점점 회피하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들을 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마주하는 나의 민낯을 보게 된 날은 종일 우울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에서 점점 소외되는 것이 나를 초라하게 했고, 나와의 공통 분모를 찾지 못하는 대화거리에서 나는 그저 경청자였고 너무 많은 것을 들은 과부화로 종일 소화불량에 쓰렸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다고 느끼면서도 한 편 요즘 사람같지 않은 나의 인식구조가 나를 결핍덩어리로 느끼게 했다. 또한 그런 그녀들을 일말 부러워하는 마음 또한 없지않기에 그저 회피가 해답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나는 그저 웃으며 대충 듣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물질주의로서는 애당초 요즘 여자가 되기 글러먹었다. 더 나은, 더 많은 물질로는 나의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음을 벌써 알았기에, 요즘 부류에 소외되었으나 온연한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슬러건의 요즘 여자에는 백분 동감하며 나에게 나를 위하는 일에 나의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함을 실감한다.
이제는 나를 수습해야할 때이다. 자식들에게 이런 모습을 양도해 줄 순 없다. 평생 보고 자란대로, 식구들에게 모든 것을 홀로 감당했던 엄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오는 나의 과잉 친절을 이제는 나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엄마처럼 살 수는 없다고, 그럴 자신이 없다고 했던 너는 어느새 엄마의 삶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온전히 나만의 거창한 다짐으로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은 채 '엄마는 이래야 해'라는 굳은 사고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나의 욕구를 겉으로 당당히 드러내며, 나만의 방으로 향하는 자유를 조금씩 얻고 있다. 그 무엇이 되었던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존중해 주는 것이 요즘 여자라면, 이제사 요즘 여자로 거듭나고자 하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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