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by 다담

'시간이 약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극한 아픔도, 고통도 결국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순리로 극복해 보자고 흔히들 위안으로 삼는다.

과연 그러한지, 진정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아무 것도 아닌 양 이겨낼 수 있는지.

이는 극복이 아니라, 그저 무뎌지고 희미하게 퇴색되는 것에 불과하다. 지극한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지속적인 고통의 연장도 있다. 결코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는 고통이 있다. 현재를 살아내느라, 잠시 묵혀있던 고통도 어쩌다 마주친 시선 하나에도, 그저 툭 던져진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그대로 살아나 온 몸 전체에, 세포 하나하나에 펴져 생생한 아픔에 전율함을 안다. 감각의 경험이 기억하는 생생한 아픔이다. 이는 수시로 무시로 살아나는 덩어리로 몸 속 어딘가에 부유하기도, 가라 앉아 있기도 하다가 약간의 틈만 있으면 존재를 드러낸다. 나의 나약함을 여지 없이 갉아먹으며 침투한다. 그러니 극복이라는 결과를 맞을 수는 없다. 고통도 학습이 되어 기억으로 저장돼 있다 보니, 그 비슷한 아픔에도 예전의 아픔이 배가되어 더 아플 뿐이다. 극복된 것이라면 같은 경험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음을 잘 안다.


그러니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간이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는 흐름이지 않은가. 하루하루 쌓이는 그 시간이 우리의 유한한 삶의 최대 변수이기는 하나, 이를 해결책으로 삼기에는 그야말로 낭비라는 생각이다. 흔히 하는 말로 가성비도 나쁘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비겁함 같음을 떨칠 수 없다. 그렇다면야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우리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시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만은 없다. 너만이 나를 구원해 쥘 수 있다 여기며 수주대토하진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에 맞서는 하루하루가 쌓여 고통이 감해 진 것을 시간 덕분이다 치부하기에는 억울함이 있다.


억지로 잊으려 하는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모른 척 무시하면 고통이란 그놈도 어딘가 숨어서 숨죽이며 그저 살지 않을까. 저도 살아야 하니. 날선 칼날도 안 쓰다보면 부식되듯이, 그놈이 가진 칼날이 차츰 닳기를 바라며. 시간 속에서 잠자다 혹 다시 깨어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으니 그냥 받아들이자. 나를 깨우고 찌르는 것 또한 그 아픔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리. 한바탕 온 몸을 뒤틀며 아파하다 세포 속속들이 들어찬 울음을 쏟고 나니, 그래도 한동안 잠잠하게 가라앉은 고요가 찾아오고 다시 앉게도 되고, 천천히 일어서기도 하더라. 낙하에는 부서짐이 전제돼 있을 것이다. 온전히 보전되는 낙하는 기적 같으리라. 그러니 하늘만 보고 닿고자 애닳지 말고, 낙하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 속이 꽉찬 낙하는 석류 알알이 붉은 피를 토하듯 결국 편안하게 땅에서도 그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내게로 온 모든 것은 내몫이려니 하자.

좋은 것만 오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나쁜 일만 오는 삶 또한 없으리라.


전화위복이고 호사다마라 하지 않는가.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며 그저 다가오는 삶에 몸을 내 맡기자.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시간의 흐름 위 흔들릴지언정 서서 서핑하는 삶을 살자.


#일살공감 #삶의태도 #성찰 #고통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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