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한 마디의 말이 더 큰 위로로 다가옴을 안다. 가슴속에 꾹꾹 담긴 마음을 꺼내 건네기까지 용기가 필요함을 알기에 짧은 한 마디가 큰 빛으로 부풀어 서로의 진심을 전해준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평소 하지 않은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쑥스럽고 무안하고 낯 간지럽다.
이럴 때는 글이 필요하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라면 더욱 속을 따스하게 데워주겠지만, 점점 사라지는 옛 라떼시절 풍속이 되고 말았으니 디지털로 전하는 글이라도 좋다. 톡톡 두드리는 글로도 말로 하지 못하는 속내를 담기엔 더욱 수월하다.
그러나 또 한 켠 생각해 보면, 그 수 많은 인연의 고리들 중에서 나의 속내를 글로 써 전달하고픈 이가 몇이나 될까 세어 보니 그다지 많지 않다. 진심을 담은 위로를 받고 싶은 이도, 진심을 다해 위로 하고싶은 이도 그다지 많지 않으며 몇마디에서 그칠 뿐이다.
은유 작가의 신작 <해벙의 봄>을 읽으며 드는 첫 솔직한 느낌은 부러움이었다.우선은 삶에서 인연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그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는 작가가 부러웠다.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편지를 전할 이가 책 한 권 가득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책 속 작가의 편지를 받는 수신인들은 대부분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주고받은 문우들이기도 했으나, 또한 삶에서 크고 작은 아픔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며 진심으로 위로하는 작가의 따뜻함이 눈으로, 마음으로 전해져 나 또한 온기를 품는 느낌이었다.
책은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다.
<해방의 밤>이라니 제목 또한 얼마나 근사한가. 이성의 방어벽을 붙들고 치열하게 버틴 낮과 달리 감성적이고 솔직해지는 밤. 낮의 소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밤의 정적을 나 역시 좋아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해방의 시간이다.
차례를 통해서도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며, 어떤 대상을 품고 따스이 위로하고픈지 알 수 있다.
<차례>
관계와 사랑
상처와 죽음
편견과 불평등
배움과 아이들
진솔함하고 담백하나 때론 사회 부조리에 용기있는 일침을, 아파하는 이들을 보듬어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은유 작가에게 매료된 책이다. 스쳐갈 수 있는 여러 책 속의 귀한 글귀들과 작가 본인의 삶 속 여러 인연들을 같이 녹여 쓴 글을 보며 나의 글쓰기 방향의 안내도 받아 본다. 사람 냄새가 진한, 부당한 삶의 부조리 속에서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절실한 삶을 다루고 있는 책을 통해 나의 삶의 방향도 성찰해 본다. 물론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에도 존경을 표한다. 이는 삶을 사랑하고, 그 속의 사람들을 애정으로 관찰하고 사유하여야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이라 더욱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리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개를 편다는 말도 있듯이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시간이 경과해야 바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p42
사람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세상이 보이는 사람이 되죠. 슬픔의 렌즈로만 보이는 은폐된 진실을 보았기에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거듭나죠 -p176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p179
함께 공부를 해도 심기에 거슬리는 게 없고 이전과 달라지는 게 없으면 서로에게 좋은 공부가 아닐 가능성이 있어요. 사유는 마찰에서 싹틉니다. -p291
티끌같이 흩뿌려져 있지만 태산 같은 힘을 행사하는권력의 언어를 저항의 언어로 바꾸어낼 아이들과, 아이들 곁에 선 선생님이 있는 교실, 다정하고 살벌한 말들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