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불친절

사회적 가면

by 다담

살을 에는 둣한 칼바람을 안고 사무실을 들어섰다. 간밤을 이겨 내느라 같이 꽁꽁 얼어있는 사무실은 영하의 바깥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도 일등이다. 불을 켜고, 난방을 켠다. 얼른 온기가 돌기를 바라면서. 커피포터의 끓는 소리가 따뜻한 김과 함께 공기를 데울 때쯤 한 둘 직원이 출근한다.

언 몸을 바로 감싸는 따스함과 함께 커피향은 하루를 기분 좋게 해주는 시작임을 알기에, 그 시작을 열어주는 뿌듯함을 매일 한다.


처음에는 집이 어디냐부터 물으며 굳이 일찍 출근하는 나를 이상히 여기던 이들도 이제는 나의 출근 후 루틴에 편해하며,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누군가의 자발적인 부지런함으로 받는 여유를 매일 인사할 필요야 있으랴. 나도 매일 받는 인사치레에는 쑥스러우리라. 사실 나 좋자고 한다는 말도 틀리진 않으니.


단지 그건 그거구 하는 세태가 얄미울 뿐이다. 넌 니가 좋아서 굳이 하는 거구 난 원칙대로 하겠다는 칼같은 불친절한 태도에 가끔 상처를 입는다. 겉으로는 밝은 미소를 장착하고선 알려주지도 않은 업무에 실수가 나면, 그것도 몰랐느냐는 웃움 띤 핀잔이 돌아온다. 업무분장이라는 효율의 옷을 입은 사회는 제각각 자기 할 일에만 신경쓰고 책임을 분배한다. 분명 한 라인으로 협업해야 하는 일인 것 같으나 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분장표 보세요 라며 말문을 막아버린다. 게다가 일이라도 틀어졌을지 다같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 누구의 실수인지를 반드시 가려내어 질타한다. 애초 만연한 웃음으로 우리 다같이 잘 해봅시다 라는 친절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게 맞는지는 모르나 이런 세태에 적잖이 상처받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그게 맞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세상은 제각각 해석하기 나름이니 그리 느끼는 몇몇의 순간이 너무 강하여 전부 그런 양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내 손가락 상채기가 남의 중병보다 크게 느껴진 어리숙함일지도 모른다.


심장에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누군가 우산이라도 씌워주기를 바랐던 사회초년생 시절 이런저런 나의 성정과 안맞는 사회에 생채기가 늘어갔다. 늘어난 옹이만큼 내 마음은 단단해진 것일까 무뎌진 걸까. 이젠 웃음 띤 상대의 가면 뒤 모습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친절이 진심인지 그저 형식적인 것인지 어느 정도 판단도 되었다.

아니 나역시 그런 친절의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의 머소를 보고 가식적이라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사회의 일원으르 상처 덜 받는 방법을 터득하며 생존의 진화를 했을지도.


그러나 아직 나는 진심은 통한다는 진리를 믿고 있고, 선함이 악함을 이긴다는 진리를 좌우명으로 여기고 있다. 누군가 불친절을 가장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와도 나의 진심이 그를 감동시켜 바르게 본모습을 보일 것이라 믿고 있다. 누구나 스스롤 지키기 위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을지언정 그 얇은 가면 뒤에는 본연의 자기 모습이 있을 것이며 이는 선하고 진실하다 믿는다.


#친절 #불친절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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