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말랑말랑한 힘을 노래한 시인
『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났으나, 우연히 놀러간 강화도 마니산이 좋아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는 그는 천상 시인인가보다. 번잡한 도시가 싫었다는 그는 그후 '강화도 시인'으로 불리며 서해 바다와 갯벌에 매료되어 강화도의 자연이 전달하는 생명력을 소재로 한 시를 쓰고 있다.
교과서에 수록된 '독은 아름답다'에서 그의 위트를, '눈물은 왜 짠가'에서 사랑으로 극복되는 그의 가난한 삶에 연민을 느꼈었다. 또한 '부부'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참 편안하게 읊을 수 있으나, 아픈 시들이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어 더 슬픈 시들이다.
독은 아름답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구린내가 난다.
주의해주세요 구린내가 향기롭다.
밤톨이 여물면서 밤송이가 따가워진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가 너그럽다.
복어알을 먹으면 죽는다.
복어의 독이 복어의 사랑이다.
자식을 낳고 술을 끊은 친구가 있다.
친구의 독한 마음이 아름답다.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 평가를 받는 대상들을 역설을 통해 위대한 부모의 사랑으로 긍정화시키고 있다.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빚더미에 쫓겨 더 이상 모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고향 이모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들른 설렁탕 집에서 겪은 시인의 일화가 그대로 산문인듯 시가 된 작품, 그의 서사가 뭉클하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말랑말랑한 힘』(2005)
-노총각인 그가 후배의 주례를 맡아 했던 주례사를 시로 쓴 것이라 한다.^^
차롓날 긴 상을 옮겨본 경험이 있어서 바로 공감되며, 그 단순한 행동에서 부부의 조화를 끌어 낸 시인에게 탐복했다.
서른 중반부터 강화의 동막해변에 월세 10만원짜리 방에서 바다와 갯벌의 생명력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 떼어 출판사로 보내 생활비로 썼단다. 49세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문병 온 제자이자 고향 친구 박영숙 씨는 그가 그리 가여워 보였다나.이후 연인이 되어 2011년 3월, 늦은 결혼을 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착한 부부’로 거듭나던 날이었단다.
“신랑 신부 나이 합쳐 100살”이라며 짓궂게 주례에서 놀린 사람은 등산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소설가 김훈이었다.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가사를 바꿔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민복이는 알게 되지~’라는 축가로 좌중을 웃게 했단다. 그와 닮은 예술가들이다.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모른다는 거지요.
-김 훈 주례사 중
나이 쉰을 맞은 함민복 시인의 늦은 결혼식에서 주례를 본 소설가 김훈의 주례사 중 일부다. 김훈에 따르면, 함민복의 아름다움은 그가 오랫동안 고난과 고생을 겪고 그것을 줄곧 우직하게 예술로 표현해왔으면서도, 그런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자기 자릴 지켜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로움에 쩔쩔매던 사람이 “남편과 아내라는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좋다”며 강화도에 인삼가게를 열어 아름다운 아내와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다니 문득 강화도에 가서 그 착한 모습을 뵙고 싶어진다.
그의 말랑말랑한 또다른 작품들을 감상해 보자.
대학 2학년이던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성선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소라 일기장
뻘은 말랑말랑해.
발자국이 다 남아
어디 갔다 왔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거짓말할 수 없어.
뻘 마을은 정직해.
- 『바닷물 에고, 짜다』
푸른 하늘
노랑 병아리
아장아장 걸어와
물 한 모금 먹으며
푸른 하늘 한 번 쳐다보면
눈동자 더 까매진다.
흰 머리카락 할머니
뒤적뒤적 알약 한 알 꺼내
물 두 모금에 삼키며
푸른 하늘 쳐다보면
금방 눈가로 물이 샌다.
-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소설가 공선옥은 함민복에 대하여 “함민복의 글을 읽는 일은 아프다. 이렇게 고운 사람을, 이렇게 착한 시인을 우리가, 우리 시대가 아프게 한 것이 아프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으로, 한 사람으로 참 궁금해진다. 그를 만나면 그의 맑고 투명함에 내 모습이 비춰지지 않을까. 그의 시들로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말랑말랑해지고 맑아지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도 다시 그의 시를 읊으며 하루를 이겨내 본다. 깨끗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시이고,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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