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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위로가 되는 시

나태주 '사는 일'

by 다담

월요일이다.

주말 간만에 만난 남동생과의 저녁자리에서

늘 동안인 줄만 알았던 그 아이의 눈에 서린 그늘이 깊은 걸 보고

먼저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누나...나도 평범하게 살고싶다"라며 고개 떨구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을 그 자세로 멈춰 있더니, 씩씩하게 웃으며 고개 들고 "누나...잘 살아보자."며 예의 그 예쁜 미소를 짓는다. '아프구나. 동생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라고 짐작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다지 힘이 없음을 안다. 그저 네 행복을 무엇보다 우선 하여 결정하기를 바란다는 말같지 않은 말만 하며 같이 쓴 소주만 마셨었다.

결국 어둔 골목길로 각자 헤어지고 돌아와서도 동생의 말은 계속 뇌리에서 울려 내내 안쓰럽고 쓰린 마음이 이어진다.

모르는 남들은 부러워하는 동생이나 고충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평범의 기준이 너무나 높아져버린 요즘, 그 평범이 우리를 옥죄는 덫이 돼 버린 세상이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출퇴근하는 직장에

평범하게 사랑하는 짝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평범하게 내집 마련하고

평범하게 재테크로 돈도 좀 벌고

평범하게 주말이면 여행도 좀 다니고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도 좀 치고

평범하게 일년에 한 두번 해외여행도 가고

평범하게 아들딸 잘 키워 친구들에게 자랑도 좀하고

평범하게 노년엔 편안하게 쉬면서 인생 마감 설계나 하며...


그런 평범에 다가가기 위해, 속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또 다들 얼마나 애쓰고 애쓰고 진을 뺐을까.

지는 해의 마지막 날빛 저녁놀은 여전히 아름답다.

인생이 저문 나이일수록 놀을 사랑한다는데, 나역시 그러한가보다. 저녁 내음과 저녁빛에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 하루 잘 살아낸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혹여 놓쳐버린 버스로 인해 걷는 일이 있더라도 그대로 또 다른 얻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니, 힘내길 바라며....


사는 일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개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제작년 GMC에서 뵈었을 때 서글한 인상의 자그마한 체구였으나 멋스럽게 중절모를 쓰시고 시와 인생에 대해 강연해주신 나태주 시인님이 다시금 생각난다. 여전히 창작에 매진하시며 작품 활동하시는 멋진 분이다.


#오늘의시#위로의시#긍정의시#나태주#사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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