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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차 오르는 밤, 읊는 시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

by 다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침대 바닥까지 꺼질 듯하여 자꾸 뒤척이고

사소한 이름에도 온 몸에 전율이 일어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태양의 낮 동안은 그래도 동분서주 움직이는 몸뚱아라와 부대끼는 인파들의 외부 자극에 반응하느라 너를 종일 곁에 둘 수 없었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밤의 시간이 되면 모든 움직임은 느려지고 감각은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여지 없이 넌 내 곁을 바싹 다가온다.

낮 동안은 네게서 겨우 멀리 도망쳐 왔다고 여겼던 그 길이,

밤이 되면 푸른 그리움의 되어 어느새 다시 네 옆자리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렇게 다시 너에게 가는 은하수길을 또 걷는다.

허우적대며 끝없는 이 밤길을 또 걷는다.

네가 준 상처가 선연히 옹이져 있어도

또 너를 찾아 이 에움길을 돈다.

곁에 있으나 곁에 없는 널 그리는 이 밤은 또 시리도록 푸르다.

이렇게 밤이면 널 찾는 내가 어리다.

아직 켜진 흐린 불빛 속 시린 영혼들,

그리움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희덕 시인의 <푸른밤>을 읊는다



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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