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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아침에 읊는 詩

꽃이 전하는 순리

by 다담

봄비 내리는 아침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땅이 녹고 어김 없이 새싹은 돋아나더니

이어 꽃들이 방울방울 시선을 끈다.

긴 겨울이 지나갔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진리를 또 체감한다.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었으나,

사실 똑같지 않은 또 다른 하루.

그저 지나가는 다른 시간들

또다시 시작된, 제 차례에 맞춘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즐길 것이다.

꽃들의 순리를 배울 것이다.

제 순서를 안다면, 기다릴 줄 안다면

세상에 다툼따윈 없을텐데..

뿌리내리고 피어날 작은 땅만 있으면

돌고도는 시간 속에 제 순서대로 피어날

이 땅의 꽃들이 전하는 순리를 배울 것이다.


그러하니 함부로

사라지지 말자.

함부로 달려가지 말자.



꽃은 달려 가지 않는다

박노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일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토끼풀꽃 모란꽃이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 가지 않는다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것이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 가지 않는다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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