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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읊는 시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by 다담

전국이 흐린 가운데 동해와 경북 기역은 대설특보가 내려져 있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산정상자락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집을 나선 후 바깥 공기로 첫숨 들이키는 순간, 한기가 온 몸을 휘돈다. 아직 겨울이나, 2월이 그러하듯 봄언저리에 있는 이 계절 따스한 봄 햇살이 그립다. 출근길 아직 꽁꽁 싸매고 종종걸음 걷는 이들 빰엔 아직 겨울이 가득 들러붙어 있다. 뿌연 공기 속에 아직 얼어 붙은 도로와 그 길을 무심히 걷는 이들, 이들을 지켜 보는 가로수로 시선을 거둔다. 이파리를 달았던 흔적조차 없이 벌거벗은 채 벌받는 듯 하늘을 받치고 섰는 나목들을 보며, 온몸으로 이 한기를 견디고 있음에 안쓰러움을 넘어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싶어 온기로 쓰다듬어라도 주고 싶었다. 생각나는 시가 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해남에서 출생 후 광주에서 자란 시인 황지우의 1985년에 출판된 시인만큼 부조리한 그 시절에 대한 열정적 투사로서 시인의 의지가 잘 드러난 시일지나, 이 겨울의 끝자락 문득 이 시가 와닿는 건 그래도 인간다운 나로 잘 살고 싶은 의지를 지니고 있음이리라. 받아야 할 벌이라면 혹독하더라도 받으며 이 겨울을 견디고, 봄에는 언 땅을 뚫고 뜨거운 혀로 싹을 밀어내고 결국 꽃을 피워내리라는 의지 또는 희망의 마음이다.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모든 사람들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아직은 닫혀 버린 겨울에 서 있으나 그래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기다리는 우리도 함께 봄으로 가자는 시인의 위로가 아닐까.


나는 나인가

나는 온몸으로 나인가

나는 스스로 온몸으로 꽃을 피워 내가 될 수 있을까

막바지 겨울을 견디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이기를 바란다.

말라버린 고목이 아니라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목이라고......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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