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멋쟁이 백석 시인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과 시
우리는 때론 비본질적인 것에 열광하기도 하고, 더 흥미를 보이기도 한다^^
수업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 문학가들의 외모 서열이 있을 줄이야~~ 또한 그 결과에 아이들의 눈빛이 그리 반짝일 줄이야~ 내 취향은 일편단심 윤동주 시인에게 온전히 투표하고 싶었으나, 결과는 #백석 시인이 부동의 1위란다. 물론 애들 말로 개취라고 할 수 있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185cm의 훤칠한 키에 살짝 날리는 곱슬머리에 늘 단정한 슈트 차림의 모던 보이 백석은 사진으로 보아도 꽤 멋지다. 21세기의 인싸나 셀럽은 될 것이며, 충분히 모델이나 연예인으로도 모자람이 없는 훈남 스타일이다.
허나 나는 백석의 시를 읽으면 가슴 시린 아픔이 느껴진다. 모던한 외모와 더불어 일본에서 영어 사범대를 졸업했으며, 영어외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무수한 외국어에 능통했다던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의 시에 느껴지는 짙은 토속성과 서사적 스토리, 감정 절제는 오랜 타향 살이에서 느끼는 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아픔이 느껴져서일까...
18세에 벌써 소설로 등단한 천재였고, 대학 졸업 후 자비로 고급스럽게 간행한 첫 시집 <#사슴>은 100부 한정판이라 이를 구하지 못한 윤동주가 시집 전체를 손수 필사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미 서른이 되기도 전에 '한반도 최고 서정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그였으나, 실상은 예민하고 결벽에 가까운 멋쟁이였다. 여럿이 사용하는 전화기는 손수건으로 싸서 사용할 정도였다하니..
운명적으로 방랑벽이 있는 것일까, 그는 꽤 오랜기간 타향살이를 했으며 정착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에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진하게 배여 있다. 어린시절 삶의 터전으로서 고향뿐 아니라 일가 친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고향은 구수한 사투리와 고향 음식, 체험 등을 고스란히 시로 형상화되어 토속성과 향토성을 지니되, 선명한 이미지를 잘 살린 모던함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중략>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야참으로 살얼음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던 국수를 순우리말로 저리도 정겹고 다정하게 표현한 그에게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고향 자체인 것이다.
초판본 시집 <사슴>에 수록된 서사적 구성의 시 '여승'은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시이다. 신경림 시인이 이 시집을 읽은 날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밤을 새웠다는 고백처럼, 나에게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뭉클하고 아린 느낌은 여고생 가슴에 각인되어 평생갈 것이다.
여승(女僧)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리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 한 편으로도 어느 영화 못지 않은 스토리를 전달해주며, 그것도 역순행적인 구성은 희곡적 반전까지 전달하면서 비극적 인물의 삶에서 민족적 아픔을 느끼게 한다. 무수히 필사하며 닮고 싶었던 표현들이다.-
잘생긴 외모에 늘 단정한 양장 차림의 그는 역시 무수한 스캔들로도 유명하다. 어른들 말씀처럼 인물값을 한건지..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의 신여성 박경련(란)과의 사랑으로 통영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었으며, 집안 주선 여인과 결혼을 반대해 도망치듯 찾아가 만난 김영한(자야)과의 러브스토리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란에게 첫눈에 반하여 통영을 드나들며 사랑을 키웠으나, 친구의 배신과 집안 반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애틋하다.
몇 학자들이 길상사로 이어진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한다. 그간 백석과의 염문 여주인공들은 다 신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이라는 것이다. 김영한은 당시 요정의 기생이었으며, 백석과는 짧은 인연이었던 듯하다. 이별 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받은 대원각 주인이 된 그녀가 전재산 1000억원을 기부하여 길상사가 건립되면서 그녀와 백석 사랑도 유명해졌다. 평생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녀의 전재산이 백석 시 한 줄보다 못하다는 지극한 아낌과 그의 생일이면 밥 한 끼 먹지 않은 애틋함은 그와의 사랑이 실제인지 단순한 그녀의 외사랑인지 모르나 감탄할 만하다.
길상사 초입 꽃무릇(상사화) 군락이 그리 이쁘다하니 시기를 맞추어 한 번 다녀와야겠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과연 그의 나타샤가 누군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 무엇이 중하랴. 사랑하는 그녀와 눈오는 깊은 산속에서 도란거리고 싶은 마음이 충만함을 오롯이 공감하며 감상하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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