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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나 고통스런 삶을 산 멕시코 화가-프리다 칼로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

by 다담

예술가들의 남다른 예민함과 감수성은 성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도 녹아 들어 참 독특한 행적으로 드러나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러한 삶이 예술작품의 강렬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니 수혜자는 감상자인 우리라고 해야할지..


특히나 문학 감상에서 생산자인 작가를 고려하는 표현론적 해석을 중시하는 나로선 예술가의 삶에 관심이 유달리 큰 편이다. 종종 수업 중 흐트러지는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할 때 자주 들려준다. 뒷얘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아한다~^^


함축적이고 다양한 비유와 상징이 사용된 문학에도 작가의 삶은 녹아 있다. 여전히 무지한 미술이지만 사실적 재현보다는 화가의 의도가 반영된 표현주의 사조 작품을 선호한다. 그저 감탄밖에 할 줄 모르는 더 무지한 클래식 음악에도 듣다 보면 창작 당시의 작곡가의 정서가 짙게 배여 있음을 느낀다. 또한 연주자의 재해석된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져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짐작으로, 추측으로 읽어내는 경우가 많다. 알고 있는 어줍잖은 사전지식으로 짜맞추어 해석하는 유치한 오류도 저지른다.


허나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보는 순간 바로 그녀의 고통이 가슴을 후빈다.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아픔이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 자체가 그녀의 그림 소재이다. 아니, 다르게 보면 그녀는 지독한 삶의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그림이 다소 기괴스럽기는 하나 밝은 색채의 강렬함과 도도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다름 아닌 그녀의 고통 극복 의지의 발로가 아닐까.


어찌보면 가장 평범할 수 있는 세 가지인 건강과 아이와 사랑을 평생 간절히 원했으나 가지지 못한 그녀.


그녀의 삶은 태풍이 수십 번은 휩쓸고 간 그야말로 질곡의 삶이다. 6세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으나 항상 밝고 언변이 탁월했으며 아름다운 외모로 눈에 띄는 아이였다. 그녀의 갈매기 눈썹은 실로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듯^^


딸교육에 적극적이었던 부모덕에 멕시코시티에 있는 최고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뜻이 맞는 친구들과 그룹을 조직하여 혁명적 사고와 행위를 서슴지 않는 청소년기를 보낸다.18세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강철봉이 척추 골반을 관통하여 허벅지로 나오며 아픈 오른발을 짓이겼다니 그 육제적 고통은 짐작조차 불가하다. 9개월의 전신깁스 상태를 유지하며 스스로 부셔졌다 느꼈다 하니..그때 오로지 자유로운 두 팔로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고 화가 프리다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그림그리기를 운명이라 여긴 것이다.

헨리포드 병원



본인의 그림을 보여 주고 평가받기를 윈했던 그녀는 당대 학교서 짧은 만남을 가졌던 학교 벽화담당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선택하게 되고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시작된다. 프리다 본인의 말로 리베라와의 만남은 버스 사고에 이은 그녀 인생의 두번째 대형사고란다

나의 평생 소원 세 가지는

디에고와 함께 하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칼로에게 디에고는 연인이자 배우자 이상이었던 것이다.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그녀의 마지막 자화상-<디에고와 나> 뉴욕 경매상 중남미작품사상 최고인 412억 낙찰


무엇보다 스스로를 응시하는 시간이 많아 자화상이 유달리 많으나 작품속 그녀는 항상 정면을 응시하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리하여 더 애잔하고 슬픔을 주기도 한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녀의 마지막 일기 구절은 너무나 유명하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했음을 알았을까..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와 함께 전해지는 죽기 8일 전 그렸다는 그녀의 마지막 그림 작품, 소재인 <수박> 보다는 그에 새긴 문구로 더욱 유명하다.


VIVA LA VIDA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

사랑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지독한 운명같은 고통의 리베라를 놓고 나서야 그녀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허나 리베라 역시 그 많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도(칼로 여동생과의 애정행각은 그래도 너무했다ㅠ) 칼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으니...

그녀의 일생 아픈 사랑과 고통을 함께한 '푸른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기증되어 그녀를 기리는 장소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그녀와 뜻을 같이 했던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에게 잠시 빌려주기도 했다던, 그래서 둘 사이 확인할 수 없는 염문설도 있었다던, 그 푸른집에 언젠가 나도 가고 싶다.

멕시코의 국보라는 그녀의 고통이 저 높은 곳에서는 없으리라 믿으며...오늘 하루는 종일 먹먹할 듯 싶다.


#멕시코화가 #프리다칼로 #디에고리베라 #VIVALA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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