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성공도 실패도, 사랑도 이별도....모두 함께 있으니 얻게 되고 잃게 되는 삶이다. 스스로 선택한 시작은 아닐지언정 삶을 시작한 우리네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살고 있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순리가 아닐까. 삶과 죽음이라는 영원한 화두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니 나역시 죽음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올해 유달리 아파하며 겪었으나 그렇다하나 나의 죽음을 매일 인지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아직은 나와는 무관하다는 오만함일까. 죽음보다는 그리움과 외로움, 소외감...혹은 타인이 주는 마음의 상처에 더 민감하다. 사랑 받으며,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원할 것이나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미련이 남고 아쉬운 하루를 마감한다.
이런 삶에 따뜻한 위로를 주는 시인이 정호승 시인이다. '슬픔의 시인'이라는 호칭을 가진 정호승 시인의 시에는 외로움, 그리움, 슬픔, 눈물이라는 시어가 자주 쓰인다. 여린 수선화 같은 색감의 외로움을 두고,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그의 대표시 <수선화에게>에서부터 문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슬픔이 기쁨에게>, 멀리 떨어져 그리워하는 이를 위해 모닥불 피우는 사랑을 노래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박종철 열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노래한 <부치지 않은 편지> 등등. 때로는 지푸라기나 귀뚜라미가 화자가 되어 아파하는 우리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대표적 다작 시인기이도 한 그는 몇 해 전 강연에서 이미 1000편이 넘는 시를 지으셨다니, 지금은 더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겠지. 항상 시를 창작하기 위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시인의 열정이 존경스럽다. 계속 시를 써야 시인이라는 그의 말대로 영원한 현역시인인 그의 수많은 시들은 대중가수들의 아름다움 멜로디와 음성이 덧붙어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70여편이 대중가요로 재탄생했다니 그것 또한 그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의 결과물이리라.
사랑의 속성을 무한한 희생과 책임으로 본다는 그는 아픈 슬픔과 고통이 있기에 더욱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니 고통을 부정할 필요도 삶에서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반짝이는 별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도 캄캄한 어둠이 있기에 더욱 그 빛을 발한다며, 낮고 어두운 현실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해 준다.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사랑을 선택하라는 그의 말이 어려우면서도 현명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언어이나 반어적으로 낯섦의 창작을 거쳐 형상화된 그의 시가 주는 깊은 따스함이 좋다.
깊어 가는 가을 김광석과 이동원, 안치환 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시인의 시를 들으며 퇴근길이 조금이나마 데워지길 바라며....
평소 참 좋아하는 시를 다시 써 본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 마음이
찾아 간 줄 알아라
-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어 주는 풍경과 바람의 관계가 부럽다. 나도 풍경에 담긴 내 그리움을 울려주는 바람을 기다린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의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한 그루의 그늘이 되고 한 방울의 눈물이 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