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몇시간 남기고 가려는 한 해를 붙들고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뭐라도 쥐어주어야 덜 아쉬울 것같다. 한 해 함께했음에 대한 속내라도 표해야 가는 이도 보내는 이도 털어내고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친정집을 나서려면 뭐든 꼭 쥐어 보내려는 엄마의 맘이 이럴까. 괜찮다는 극구 사양에도 나서는 손에 들려주는 극성, 그 맘에 돌아서 오는 길이 따뜻했던 기억에 나도 그러고 싶은 건지도.
나름 올 해는 <시련극복기>라 불러도 될 터이다. 아니 극복한 것도 아니고 극복될 문제도 아니니, 그저 <시련극복도전기>라 부름이 더 적합하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아픔들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러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픈건 아픈거니, 참 힘이 들었다. 그래도 살아내야 했다.
억지로 끊어진 두 혈육이 남긴 커다란 빈자리
이를 감내하지 못하는 남은 이들의 방황
연이어 계속 나빠진 부모님의 건강과 이별
계속 누적되며 쏟아지는 과다한 업무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사라지는 잔고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헛도는 진심
그럴 때가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간다 여기며 땀흘리며 달리고 있는데, 옆에선 바람 만끽하며 자전거가, 자동차가 쌩 앞서가는 걸 황망히 바라볼 때가 있다. 자동차가, 아니 자전거조차 소유하지 못한 나의 무능이 문제일까. 어떤 방법으로 출발하는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앞을 보고 달리라는 이들의 잘못일까. 중간 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지는 바라보지 않은 채 어디까지 왔는지만 평가하는 이 세상이 야속하다.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닌데 출발에서부터 부당함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나.
그러나 그 또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올해는 돌부리 걸린 삶에 잠시 쉬기도 했고, 여전히 손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며 삶을 알게 되었다. 삶에 "만악에"는 늦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고, 지나간 것은 보내야 함을 알았다. 표현하지 않는 감정들은 그저 집안 어딘가에 먼지와 쌓여있다가 이사할 때나 발견하고 쓸모없음에 폐기되는 물건마냥 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사랑도 미움도 혹은 아픈 그리움도 마음 속에 담아두기보다는 드러내야 건강한 감정으로 나를 살릴 수 있음을 알기에 올해는 나름 최선을 다해 감정을 드러내려 노력한 해였다.
어설픈 말보다는 글이 더 나다움을 알기에 제법 여기저기 끄적인 해였다. 쓰다보니 스스로 위로됨이 가장 컸고, 공감해 준 이들의 감사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의 글에서 계속 달리고픈 힘도 받았다.
그러하니 내 년은 좀더 나답게 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더 많이 보고, 더 배우고, 더 느끼며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내 년 세밑 해넘이 즈음엔 어떤 모습으로 또 한 해를 회상할지 궁금하다. 적어도 나에게 당당하길 바라본다.
모두에게 한 살 더 성숙한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길 바라며.
#연말 #해넘이_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