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은 불편함을 더 즐기고 싶다.
갈수록 자동화에 기계화 되어 가는 현실에 인공지능까지 더하여 인류는 더더 편리함을 추구한다. 그다지 멀지 않은 어린시절과 비교해 보아도 무슨 원시시절마냥 그 변화는 무서우리 만큼 빠르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하는 인간의 정형화될 수 있는 노동은 거의 기계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업무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놀라울 정도라며 극찬한다. 그 디지털의 원리와 작동에 어리숙한 나는 늘 당황스럽다. 나를 주눅들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나름 전문가라 생각하고 내것이라 자부했던 지식들이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 더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물론 그 기능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고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쩌라 맞춰야만 돈벌이라도 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
업무상 디지털을 늘 가까이하고 능숙히 사용해야하나 내 삶의 태도는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어서 난 느리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 속도로만 따진다면 나는 아직 무궁화호에 탑승 중일 것이다. 옆 차선엔 300km의 초고속열차가 지나쳐가고 있는데. 그러나 업무상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상에서는 되도록 디지털을 멀리한다. 누구누구가 새 기기 뮐 샀더니 삶이 행복해졌다는 얘기는 흘려 듣는다. 내 행복은 아니므로 미소로 답하나 부럽지는 않다.
방대한 양의 책 한 권도 멏 초 내 다운 받아 손끝으로 슥슥 넘기는 e-book은 잠 펀리하다. 늘 손에 쥔 스마트폰 그대로 책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이책 저책 바꾸기도 쉽다. 무엇보다 갸격이 저렴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직접 서점에 가서 이책저책 직접 만져보고 뒤져보고 읽어보다 사서 온다. 헌책방이면 더더욱 좋다. 쌓여 있는 책서고가 주는 무질서한 규칙과 책내음이 주는 향수에 행복감도 느낀다. 사르락 책 넘기는 소리와 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을 사랑한다. 맘에 드는 구절이라도 있으면 귀퉁이를 접기도 하고 줄을 그어 놓고그때 감정을 같이 써놓는다(당연 e-book도 그런 기능있다길래 사용해 봤으나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와의 합일은 결코 e-book이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이런 나이니 집은 책더미에 엉망이나 이는 타인이 보는 시선이요 내 시야 여기저기 시야 가까이에 책이 있어 좋다. 이런 나이니 어쩌리. 불편해도 느리게 갈 수밖에.
요즘은 직접 통화보다 디지털 문자 소통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것도 점점 저 짧게. 외계어 같은 준말들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타자 속도가 가히 놀라울 뿐이다. 시공간 따위 가뿐히 넘어서 쉽게 빠르게 소통한다. 엄청난 양의 대화가 이뤄지나 실제 대면대화에서는 어리숙한 이가 넘 많다. 모두가 디지털 코쿤족은 아닐지나, 디지털만 있으면 삶에 지장이 없기에 기꺼이 칩거하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 SNS상 아는 이들이 무수히 많은 소식을 막 던져주고 있으나, 내 외로움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그럴 때 차라리 하얀 종이를 꺼내 "친구야, 잘 지내니? 문득 생각이 났어. "로 시작하는 손편지를 쓴다. 함께 했던 추억도 쓰고 소원했음에 미안함도 쓰다보면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다소 민망함에 보도블럭을 천천히 걸어가며 붙일까말까 또 고민해 본다. 호주머니 손끝에 전해지는 편지봉투의 감촉과 올려다본 맑은 하늘에 용기내어 우체국에 들어선다. 편지가 도착할 하루 이틀 느린 시간 속에 난 두근대며 설렐 것이다. 친구가 "야~~너 뭐야~~"라면 감동 가득한 전화를 바로 줄지, 나처럼 답편지를 줄지 모르나 이런 기대들이 좋다. 아직은 느리게 살고 싶은 이유들이다.
새벽에 뒤척일 즈음 문자음이 울리고 새벽 배송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24시간도 안돼 배송이 되는 진짜 편리한 세상이다. 배달 안되는 게 없으니 소비자는 그저 집에만 있어도 된다. 필요한 게 무엇이든 배달비만 지불하면, 아니 배달료조차 안 받고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가격도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 이러하니 어찌 동네슈퍼가 살아남고 재래시장이 유지될까. 사라질 것들은 결국 시대흐름에 따라 사라지겠지만, 그것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난 쉽게 돌아서지 못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나면 동네 재래시장을 찾아 좌판 할머니가 쪄서 파는 옥수수며 정성스레 담근 젓갈 반찬을 사러 간다. 이것저것 집반찬을 내주시는 생선구이 정식을 먹고 오는 날은 온몸이 따스히 데워진 것 같다. 타지역을 여행할 때도 지역 재래시장을 찾게 된다. 여기저기 무질서한 듯 아닌 듯 구역이 잘 나뉘어 통통 튀는 삶의 생기가 느껴지는 현장을 좋아한다. 지역 특산물은 온라인에서 눈대중으로 사는 것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
늘 이렇게 살지는 못할지나 잘 알고 있는 행복이기에 그저 펀리함으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들이다. 나를 알기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에 오늘도 난 좀 천천히 세상을 따라가는 중이다. 다소 불편하나 행복한 내 삶에 만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