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말은 정말 진리이다. 굳이 쓴 한약재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대체로 건강한 식재료라 하는 것들이 내입에는 그다지 맞지 않아 즐기지 않는다. 아직은 입속에 달콤함이 가득 배이는 것들을 좋아하고, 적어도 상큼하거나 매콤하거나 짭조름한 맛을 즐긴다. 그러니 그저 원재료 그대로의 싱싱하나 밍밍한 맛, 혹은 쓴 맛, 시큼한 맛은 멀리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 건강한 먹거리는 아직 가족에게 양보하거나 애써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잘 찾지 않는다. 대기업의 대중적인 간식거리며 밀키트의 맛에 더 구미가 당긴다. 아직 젊어서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핀잔도 제법 받았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 먹고 싶지 않은 걸.
가끔 수업시간 전후 차를 대접받는 경우가 있다. 이름조차 낯선 식물차인 경우도 있고, 교무실을 가득 채우는 한방차인 경우도 있다. 주신 분 성의를 생각해 미소로 감사히 받으며 한 입 대보나, 영 내키지 않아 몰래 버리기도 한다. 이젠 아예 "김선생님은 몸에 좋은건 안 좋아하시죠?"라며 웃으며 내 순서는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
올해 내 옆자리에 앉은 신입 선생님은 참 맑다. 감추는 게 없다. 하는 일도, 느끼는 감정도 거르는 것 없이 솔직하다. 그렇다고 밉상스럽지 않고 기분좋은 웃음 짓게 하는 재주가 있다. 자신의 실수나 모자람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특히 교사직군-정말 자신을 낮추어 모르는 건 언제든 묻고 받아들인다. 게다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른다. 늘상 뭔가를 조물락거리며 만들고 있다. 혹여 재활용수거함에 종이박스라도 나오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보물이라도 밝견한 양 기뻐한다. 그러고는 한 시간 정도 뚝딱거리더니 거추장스런 전선을 감추는 깔끔박스로 탄생한다.
자칭 박스성애자라는 그녀는 또한 건강염려증 또한 자니치다. 몸에 좋은 건 뭐든 좋아한다는 그녀는 일단 출근 후 챙겨 먹는 영양제 수가 많다. 거기에 어디어디에 좋다는 꿀차며 보이차 등 수시로 권한다. 난감하다. 업무상 몇번 도움을 주고, 연구수업을 위해 이런저런 팁을 준 것을 계기로 아예 나의 팬이 된 양 이런 이런 챙겨주는 것이 늘어간다. 때론 손하트를 날리며 애교를 부리기까지 한다. 참 표현이 솔직함을 다시 느낀다.
어느 날 출근 후, 우리 부서원들에게 그녀가 쭉 뭔가를 나눠준다. "이거 드시면 뱃살이 쫙쫙 빠져요, 우리 다같이 다이어트해요."라며 나눠 준 것은 다름 아닌 대추칩이었다.
나에게 대추는 제사상에 올려서 깐밤과 구색 맞추는 것이거나, 가끔 여름 보약으로 먹는 삼계탕에나 넣는 것이었다. 생으론 먹어본 적도 없는 옛스런 간식이었다. 감자칩, 고구마칩은 들어봤어도 대추칩이라니. 얇게 편으로 썰린, 바싹 말린 모양이 칩은 칩이었다. 성의를 생각하여 억지 미소를 지으며 한 입 먹었다. 오도독, 오도독. 어라, 꽤나 맛이 있었다. 대추의 적당히 단맛과 바싹한 식감이 좋았다. 나만 그런건 아니었는지 다들 한마디씩 했고 반응도 좋았다. 구입 사이트를 묻고, 중국산과 국산의 차이를 신나게 떠드는 그녀의 일장연설을 우리는 웃으며 들었다.
송정 시댁 마당에 제법 실한 대추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오가는 길에 오동통 여물어 가는 대추 열매를 보는 맛이 있었다. 선선한 가을 어느날, 볕이 좋은 날이면 아버님께서 "아이들 데리고 체험학습 하러 오너라." 그러시면 우리는 마당에서 대추 열매 따기 체험을 하며 하루를 즐긴다. 통통한 초록 대추 열매는 늘상 보던 쭈글한 팥죽 빛깔의 대추가 아니다. 사과보다 더 달다고 어머니도 신랑도 아삭아삭 씹어 먹었으나, 나도 아이들도 그저 따는 재미 딱 그만큼이었다.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 대추를 누가 많이 줍나 내기도 하며 깔깔거렸던 그 날의 밝음이 한꺼번에 가슴에 훅 들어왔다. 공기 가득했던 따스함이 온몸에 돌고돌아 우리들 미소로 다시 퍼져나오던 그런 날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그 집도, 어머니도, 그 달다던 대추도 없는 지금, 난 옆 자리 선생님의 호의로 대추를 먹고 있다. 그 때 그렇게 권하던 어머니 앞에서 맛있게 먹어 보고 함박웃음이라도 지어드릴걸, 이제사 후회가 된다.
며칠 후 우리 교무실은 때아닌 대추칩 열풍이 돌아 너나 없이 쉬는 시간이면 오도옥 오도독 대추를 씹고 있다. 나역시 이왕이면 국산 대추칩으로 주문하여 동참하고 있다. 내가 씹고 있는 것은 건강일까, 추억일까.
#대추칩 #추억 #건강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