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아가는데 급급한 우리는 역사에 무감하게 살아간다. 그저 흘러가 버린 과거사이며, 굳이 몰라도 되는 것으로 현재 내 삶의 생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쉽게 치부한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현재의 삶이 누적된 것으로 지금도 역사는 진행 중이며 제대로 정산되고 평가되지 못한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현재의 삶이 결국 미래의 인과가 되어 평가된다. 누구에게는 과거 역사의 왜곡된 평가로 현재까지 뼈아프게 견뎌야만 하는 시간을 지내기도 했으며, 여전히 잘못된 질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회에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회는 결국 오점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며 건강하지 못한 국가일 뿐이다. 인류 문명은 점점 편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나, 과연 문화를 포함한 인류 제반 역사는 바르게 가고 있을까. 거듭되는 시행착오들과 이를 바르게 이끌어 가려는 올곧은 이들의 노고로 잘 가고 있다고 믿어도 될까. 의문이다.
언제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연도와 사건들의 단순한 순서를 외워야 하는 역사라면 진저리를 쳤지만, 사건들의 인과적 연결고리와 그 전개 과정 및 결과, 개개 사건 속에 함께한 인물들의 삶에 흥미를 느끼면서부터였다.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역사는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 넝쿨마냥 삶의 온갖 희로애락을 만났다.
갈수록 역사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학생들을 보며 그 안타까움은 단순히 교사여서라기보다는 기성세대로서의 우려이자 반성이었다. 그나마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변경된 것은 다행이라 여긴다. 입시라는 명목이더라도 학습을 해야 한다고 믿기에. 역사를 소재로 한 수많은 문학, 영화나 드라마가 때론 왜곡되기도 하고 잘못된 역사적 지식을 전하기도 하나 그럼에도 역사를 외면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한 방도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물이 출간이든 상영이 되면 그저 반갑다.
2009년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안중근 의사 후손들의 참관 하에 초연된 뮤지컬 <영웅>의 인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2015년에는 실제 의거 장소인 하얼빈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초연때부터 줄곧 안중근 역을 맡은 정성화는 더 뮤자컬 어워즈와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으며 명실공히 실력을 인정 받았다. 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영웅>이 2022년 12월 21일 개봉을 했다.
영화 포스터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김훈 작가의 <하얼빈> 출판으로 재조명 받은 안중근 의사와 뮤지컬로 십년이 넘게 무대올린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었으니 이미 많은 우려와 기대를 받고 있었다.역시나 예리한 평들의 칼날이 평점을 쏟아내었다.
영화 홍보 이미지들
그러나 나에겐 다 아는 서사일지라도 보고 또 보아도 비장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에 눈물이 절로났다. 초입의 단지동맹에서부터 가슴 찌릿하게 울컥하게 하더니,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와 수의 장면에선 눈물이 연이어 흘러 닦을 수조차 없었다.
감독 특유의 코믹 장치 부분에서 서사가 이완되었다 한들 액션이 다소 허술하다한들 조연 스토리에 인과성이 부족하다한들 그들의 고국사랑과 열정적 희생은 충분히 감동적으로 전달되었다.
<누가 죄인인가> 넘버는 역시나 비장미 끝판이었다. 부당하기 그지 없는 재판장에서 안중근 의사와 투사들이, 입장조차 불허하여 밖에서 지켜보는 가족과 동포들이 부르는 그 현장에 나역시 뛰는 가슴으로 함게 했다. 뮤지컬 무대만큼의 현장성은 부족할지라도 그들의 진정성이 전달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처럼 끊임없이 재조명되는 역사가 있는 반면, 여전히 묻혀진 채 잊혀 가는 역사도 얼마나 많은가. 잊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아예 왜곡돼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의 후유증으로 질곡의 시간을 견디고 있기도 하다. 과연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진실되게 전달되고 있는가. 어두운 역사 현장의 터널을 지나온 작가들은 그 경험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것을 육중한 의무나 소명처럼 가슴의 짐처럼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예술성이 다소 희석되고 고발성이 더 짙다하더라도 응어리를 풀고싶은 그들의 한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독자로서 읽기만 하기에도 아프다.
때로는 현실에서 묻혀가는 역사적 사실을 문학으로 먼저 재현함으로써 다시 재조명 받게 하는 일도 있다. 제주 소설가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의 경우라 본다. 제주 4 3사건을 사회적으로 재조명하게 한 계기가 된 소설이다.<순이삼촌>의 변함없는 가치는 역사적 진실 복원의 첫시발점이라는데 있다.실제 역사가 드러내지 못하는 일을 문학이 대체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예술적 형상화 기법도 탁월하니 가히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거짓으로 위장된 진실을 아는 자의 억눌림을 절규처럼 그려낸 그의 치열한 외침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학적 기능에 충실한 또다른 작가로 한강을 들 수 있다. 5 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각각 6명의 시선으로 사건 당시와 그 이후를 서술한 <소년이 온다>를 들 수 있다. 작가는 광주를 중심으로 역사적 과정보다는 개개인의 고통과 내면에 집중하여 서술해 나간다. 본인의 자전적 요소를 담은 이야기를 쓴 것을 보더라도 유년 시절 겪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나 그녀 특유의 섬세한 내면 묘사로 훌륭히 완성해 낸다. 이런 그녀의 필력은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제주 4 3 사건을 소재로 하는 이 소설은 역사에 짓밟히고 폭력에 훼손되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자하는 인물들의 의지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여전히 고통받는 생존자와 그가족들이 있다.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릴 수는 없는 아픔이나, 죽음이 계속 살아있게는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시각은 제목인 <작별하지 않겠다>는 말로 일축된다. 겨울 눈 내리는 풍경이나, 그 속의 나무들과 같이 공생하는 새, 그림자 등의 소재를 섬세하게 묘사한 장면의 현장감은 탁월하다. 역시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고통과 그를 지켜보는 이와 사회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적 고통을 아프게 서술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독자로서도 아팠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역사를 어떻게 정립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는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역사라도 그저 잊어져도 되는 역사는 없을 것이며, 왜곡되도록 방치해도 되는 역사는 없다. 과거의 인과로 만들어진 오늘이 결국은 미래의 역사의 인과일지니 옳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작가들만의 소명은 아닐 것이다. 보아주는 이 없는 예술적 재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