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著

by 다담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에요." 첫장을 넘기면 보이는 문구이다.

우선 부러웠다. 아버지에게 헌사하는 책을 지은 작가도, 그 헌사를 받는 아버지도 부러웠다. 그 다음은 사연이 궁금했다. 왜, 무슨 이유로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것일까. 나역시 아빠에 대한 글을 써 본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이 더욱 궁금했다.

본문을 들어가기 전, <이 책을 위한 헌사>를 먼저 책 서두에 두었다.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이 남긴 헌사를 읽으며, '이 정도야?' 라는 감탄과 의아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 중 가장 와닿은 내용을 옮기자면,

"놀랍도록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렌즈 삼아,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인데도 자연의 원리로,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졌던 광범위한 이원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략> 자신의 마음을 따라 세상을 향해하며 택한 위험한 우회에 대한 결산, 그리고 그 향해에서 예기치 못하게 도달한 항구에 바치는 사랑의 편지"이다.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이 책은 저자의 과학 잡지 기자로서의의 안목과 판단력이 잘 응집된 책이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니. 내가 아는 그 수 많은 물고기들과 얕은 과학 지식은 뭐지 라는 회의로 출발해 본다. 다소 불량스런 제목과 과분한 헌사로 흥미 가득 안고, 그 의미가 사뭇 궁금하여 답을 찾고자 놓을 수 없는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자연과학 교양서적인가 하면 유명 과학자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인 듯도 하고, 작가 본인의 삶을 너무나 진솔하게 풀어 쓰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회고록 겸 사랑 이야기인 듯 집중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표지에 써 있듯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임을 다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Non-픽션임에도 서사나 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반전의 재미가 읽는 내내 집중하게 한다. 잘못 평가된 과학자의 명성과 자연과학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조밀하게 전개해 나가는 작가의 성실한 전개가 꽤 믿음직하다. 또한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황과 용기있는 선택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명문대 학장이었던 저명한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와 작가의 내밀한 서사라는 두 축이 결국 혼돈의 삶을 살아내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우리의 성찰적 자세를 이끌어 낸다. 대지진으로 다 깨져 바닥에 흩어져버린 물고기들 표본들을 본인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켜낸 과학자, 믿고 있는 일에는 어떤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어도 해내는 절대 그릿(grit)과 신념의 소유자 조던이 최고 명예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심도 있게 풀어간다. 그러나 유전적 이원론을 지나치게 믿은 그는 결국은 우생학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을 맹신하게 되고 인류에 폭력을 저지르는 과학자가 되어버리는 반전의 과정에서는 온 집중을 하게 한다. 인간을 최고 정점에 두고 생명체를 일직선으로 분류하는 사다리적 사고가 잘못되었음을,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찬찬히 조리있게 말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문득 한 작가의 질문,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라며 사람도, 삶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혼돈만이 유일한 지배자라 했던 아버지의 말을, 살면서 만난 사회적 약자 혹은 우생학적 열등자들의 삶을 통해 사실은 우리 모두는 중요하며 서로의 삶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의 깨달음을 아버지에게 전하는 책일까. 작가 나름의 아버지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으리라. 아버지가 말한 혼돈 속에서 삶의 진실을 깨달은 작가의 소박한 항변.

결코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일원론적 사고로 그들의 생명을 대신 판단할 수 없으며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그 존재의 기원을 저울질할 수도 없다. 인간이 그어놓은 선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은 제대로 모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독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해야 함을 말한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거야-p252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바깥에 훨씬 더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줘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p267


책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독특한 삽화가 인상적이었는데, 글의 끝에 설명이 있었다. 19세기에 처음 생긴, 판에 직접 새기는 스크래치보드 기법으로 점토로 된 흰 하드보드를 검은 먹물로 코팅하고 바늘을 기본 도구로 긁어 내었다 한다. 또한 이 책이 출판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 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름이 붙은 건물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는 후문도 소개돼 있다. 언중의 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작가의 머릿말 인사처럼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다르게 보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이루진 것이리라.


작가처럼 우리가 물고기를 포기하고 얻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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