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작가가 나에게는 장영희 교수님이다. 작가마다 나름의 문체적 특징을 지님은 당연한 것이며, 이는 그 작가의 오랜 삶의 습관이나 사고의 자연스런 반영이라 여겨진다. 글을 쓰다보면 알게 모르게 생활 습관적인 말투를 그대로 쓰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말과 다른 글이니 좀더 고상한 어휘나 꾸며서 쓰고자 해보면 곧 어색함을 느낀다. 결국 하던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 이런 점에서 장영희 작가는 한번도 만난 적은 없으나, 같이 옆에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가이다. 이렇게나 솔직한 글이 있을까 싶을 만큼 유리처럼 본인을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글을 쓰셨다. 참 반듯한 글이며 그 사람이다. 진솔함과 소박한 글투에 그저 감동하게 하는 글이다. 부럽고 닮고 싶은 글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말한다.
몸통에 비해 너무 작은 날개를 지닌 꿀벌은 사실 제대로 날지 못하는 신체 구조이나, 자신이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열심히 날개짓을 하고 결국 날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도 무지한 꿀벌의 날개짓같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차례를 보자~
어느 출판사의 교과서라도 작가의 글이 종종 수록된다. 이 책에도 역시 수업했던 글 몇 개가 눈에 띈다. 교과서의 무게인지 평가와 연결되어서인지 그땐 그저 보았던 글들이 한 권의 책 속에 작가와 함께 앉아 있으니 또 다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말처럼 장애로 인해 제한적인 작가의 행동반경은 늘 주변 사람과 작가 본인이 주 글의 소재가 된다. 특히 가르치는 학생들과 부모님, 형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소개 또한 많아서 작가를 '문학 전도사'라 칭하기도 한다.
나역시 그러하다. 점점 더 좁아지는 삶의 반경은 직장과 집이 대부분이고 새로운 만남이라야 매년 만나는 신입생과 신입 교사가 다이다. 그 속에서도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삶을 보고 듣지만, 시야가 좁아지지 않기 위해 책을 가까이하고 SNS소통을 시도한다. 작가에게 특히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자의 생은 누구라도 선택하지 않은 삶의 시작일지나, 현재 어떠한 모습이든 그 속에서 사랑을 찾고 희망을 노래하며 삶을 사랑하는 작가의 긍정 메시지가 참 좋다. 작가처럼 소박하나 바르게 살고 사랑한다면 한평생 잘 살았다 싶을 것 같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니까.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는 희망, 누군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주리라는 희망, 내일은 내게 빛과 생명이 주어지리라는 희망...그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자살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P89
이 세상에서의 고통, 고뇌, 역경이 아무리 클지라도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 사람들과 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고리로 연결되어 있나보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