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공히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는 초기 실험성 강한 소설들 발표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중국 내 각종 문학상은 물론이며, 그의 소설이 영화화되어 각종상을 수상하기도 한 유명 작가이다. 거장 장예모 감독, 갈우/공리 주연의 동명 영화 <인생>은 94년 4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95년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여 작가 위화의 명성에 한층 유명세를 입혔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2015년 하정우/하지원 주연의 <허삼관>으로 영화화하였다. 손익분기점을 약간 넘기지 못하여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나, 한국 전쟁 시기로 각색하여 웃음과 눈물로 가족애를 그린 따뜻한 영화였다.
위화의 8년 만의 신작 <원청-잃어버린 도시>를 읽었다.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여정 위에 선 인간의 숭고한 발자취.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는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대혁명이 끝나는 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그는 청소년기를 오롯이 문화대혁명과 함께한 것이다. 그가 온몸으로 겪은 역사는 소설 속에 녹아 다소 폭력적이고 혼돈스런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에 작가는 "평온하고 질서 있는 사회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라고 하며 잔인한 폭력의 섬세한 묘사는 위화 문체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허나 그에 못지 않게 섬세한 장면 묘사와 시적인 표현과 수사의 탁월함 또한 그의 매력이다. 자신이 유명해진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답한 그이나, 그저 운으로 책이 한 해 200만 부나 넘게 팔릴 수 있을까. 그의 문체상 매력이 독자를 충분히 끌어 당기고 있음을 이번 책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특징들이 모두 녹아 있는 소설이 바로 <원청>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하니 "위화다운 소설이라는, 위화의 귀환, 위화적인 순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문학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음에는 회의적이나, 문학 작품이 한 사람의 시각을 바꾸는 정도의 효용 가치는 지니고 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여러 민중들의 삶을 만나면서, 삶이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며 거창한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님을, 그저 매 순간의 선택의 결과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원청/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타이틀의 두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은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다소 거북하고 불친절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착실하고 모범적인 청년 린상푸에게 어느날 운명처럼 찾아온 여인 샤오메이와의 인연, 그리고 문득 사라지기를 두 번, 결국 간난 젖먹이 딸을 업고 그녀를 찾아 고향이라는 원청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 첫 스토리의 주축이다. 읽는 내내 그에 대한 연민을 놓을 수 없었고, 가족의 만남을 기대했으나 결국 작가는 친절하지 않았다. 청말민초 중국의 혼란기에 기승을 부린 토비들이 인질에게 자행한 고문의 잔악함을 섬세히 묘사하는 부분에선 치를 떨게 했다. 과연 저 정도일까하는 의구심과 사실은 더 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 마음 사이에서 불편했다. 작가가 본인의 소설은 영화화하기에 끔찍하여 감독들이 싫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침탈기에 외적에 의해 자행된 살육도 저 이상이리라 여겨 읽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린샹푸와 천용량, 구이민 등 인물들의 정의로움과 용기에서 역사는 민중에 의해 올바르게 도약함을 느끼게 했다. 그들의 삶은 비극적일지라도 결국 그런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린샹푸 자신의 온 삶을 걸고 찾아온 여인과의 재회 따위는 허락하지 않은 채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나버려 가슴이 먹먹했는데, <또 하나의 이야기>편에서 그 여인 샤오메이와 아창 이야기가 두번 째 스토리로 이어진다.
봉건적 사고를 지닌 시어머니의 다소 과한 처벌로 친정으로 쫓겨난 샤오메이, 남편 아창은 그녀를 잊지 못해 집안 돈을 훔쳐 그녀를 찾게 되고 두 사람의 유랑이 시작된다. 그 여정에서 린샹푸와 인연이 이어지고 앞 이야기와 연결된다.
이 둘 역시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제를 지내던 중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 나름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한 것인지 참 당황스러웠다. '이런 게 삶이지'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일관된 스토리나 구성상 개연성은 참 없구나 싶었다. 린상푸와 샤오메이를 서로 시신으로나마 잠시 스쳐 만나게 하는 작가의 의도가 마지막 친절이라고나 할까.
김태성 중국문학 번역가의 이 소설 서평 중 "우리 삶의 무력감과 불가항력을 풍경으로 전환해 주는 죄고의 장치가 바로 소설이라며 까위의 말을 인옹한 글이 다시 떠오른다-우리의 삶은 어떤 이론으로 해석되거나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기억된다-" 이 소설 내내 흐릿한 겨울 눈 내리는 장면이 내내 각인되는 것도 인물들의 운명을 함축하는 풍경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