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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Oct 09. 2023

돈버는 재주는 없나봐요

행복의 척도

  같은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든 질끈 묶은 긴머리든 찰랑거리며 무거운 가방 메고 3년을 같이 보낸 동창생들과 아주 가끔 만난다. 단짝이라 여기는 친구들은 수도권에 정착하여 사는지라 자주 보지는 못하나, 볼일 있어 올라가는 길은 꼭 약속을 하고 만난다. 불안했던 입시와 더 불안했던 취업 준비를 같이 했으며, 서로의 연애사도 그 후 결혼까지 지켜 본 사이들이라 만나면 이야기가 끝이 없다. 각자 보금자리로 귀가 후 마무리 인사는 행복했고 아쉬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같이 한 시간보다 다른 길로 삶을 산 세월이 더 길어진 즈음 친구들과 만남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나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지나온 추억 얘기는 매번 할 때마다 여고생마냥 깔깔대며 공감대가 금방 형성된다. 희안하게 세부적인 것까지 꼼꼼히 기억하는 부류가 있어서 그의 얘기로 "그랬어?" "진짜?"를 남발하며 기억회로를 뒤집어 가며 한창 수다를 떤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고 각자 기억은 다소 왜곡되는지라 알게 모르게 지치게 하는 바도 있다.


 더욱이 현재의 삶으로 화제가 옮겨지면 더욱 난감할 때가 있다. 직장생활 한번 하지 않아도 남편의 수입으로 풍족히 사는 이의 화젯거리는 명품구입과 해외여행, 가끔의 친정어머니로 인한 고충이었고, 그를 부러워하는 몇몇 부류들은 같이 합류하여 부동산 및 주식 등의 재테크로 벌어들인 자산 자랑과 정보 공유였다. 자식들 입시대비를 위해 엄마의 노고가 얼마나 필요한지 설파할 때 그녀들은 반전문가 이상이었고 대단해보였다.


 그렇게 그들 무리에서 내가 낄 대화의 자리는 점점 좁아져갔다. 재테크보다는 아직 아름다운 자연이든 예술이든 감상에 더 행복해하고 어디어디가 차기 떠오른 부지이고 무슨 주가가 폭등할 거란 얘기보다 신간도서와 누구구누의 그림이 멋있다는 난 영락없는 철부지였다. 그렇게 그들은 점점 나와 거리를 두며 따로 톡방을 공유하고 만남도 더 자주하고 있다.


  그렇게 돈 버는 재주가 없는 나의 삶은 그네들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삶의 깊이 속에서 각자의 행복 기준이 있을 뿐이다. 주식 반등으로 기뻐하는 행복과 책 한 권 완독한 나의 기쁨의 행복이 어찌 비교될 수 있을까. 건강에 예민하여 무슨무슨 영양제가 좋고 어디어디 병원이 잘 하며 식당은 믿을 수 없으니 요리학원 다니며 좋은 식자재로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그네들은 나의 삶이 염려 그 자체라 아낌없는 순수한 충고를 한다. 아침은 거의 거르고 직장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과 피곤한 저녁은 전문가가 해주는(나보다 훨씬 나은 요리실력이니)식당에서 따뜻하게 한끼 해결하는 나의 삶이 걱정 자체일 수 있으리라. 타인을 불신하며 스스로 더 부지런히 건강한 삶을 누리는 산택을 응원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리 살 수 없고 그렇지 못한 삶을 비하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철저히 녹아들어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자 사는 것도 각자 선택일 뿐이다. 그로 행복을 느낀다면 된 것이다. 타인의 판단에 내 기분을 맡기지 않으려 한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는 나만의 행복 척도를 들고서 삶을 당당히 살아내려 한다. 결코 멀지 않은 죽음으로 가는 길에 남과 비교하며 매번 쫓아가느라 항상 결핍과 공허함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 느린 나만의 시간으로 스쳐가는 바람과 햇살과 잘디잔 자연의 생영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라하여 난 오늘도 가을볕에 익어가는 주황감들과 노란 은행잎을 보러 숲 산책을 간다.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찾는 삶의 행복에 취한 나를 응원한다.


#행복 #비교 #친구 #자본주의 #각자인생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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