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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일 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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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Sep 21. 2022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음식이 필요할까?

나의 답은 즐겁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한다. 안타깝게도.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일일 일식을 십 년씩이나 했어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움켜 쥔 이 식단을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성인 여드름으로 고생할 때는 하루가 멀게 종류와 방법을 바꿔가며 닥치는 대로 실험하던 그 마음이 어느새 온 데 간데 사라지고, 한번 익숙해지고 편해진 것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개선할 시도도 없이 현상유지에만 급급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식단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생겼다.  


전업 주부로 지내던 일상을 뒤로하고 하루아침에 세탁소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세탁소 캐셔를 해볼까 했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들에 문의했더니 캐셔 자리는 없고 세탁 공장을 겸한 세탁소에서 배깅 하는 자리를 제안받은 것이다. 배깅이란 세탁이 완성된 의류를 행어에 걸어놓고 세탁소의 얇은 보호용 플라스틱 비닐을 씌우는 일이다. 이렇게 완성된 의류들은 분류작업을 거쳐 컨베이어 벨트에 설치된 행어에 걸려 있다가 손님들이 찾으러 오면 내주게 된다. 이 배깅 작업은 작업하는 동안 서 있어야 하며 두 팔을 써서 의류의 기장만큼 온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반복한다. 비닐을 씌웠으면 아랫단도 잘 마무리를 해줘야 하고 롱드레스처럼 아주 긴 기장의 옷들은 끝부분을 묶어주기까지 해야 하니까 별도의 노력이 추가된다.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주 5일을 일하게 되었는데 일한 첫날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하기를, 이 정도의 노동 강도이면 한 끼로는 안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두 끼를 먹으면서 일일 일식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점심 한 끼를 먹되 억지로라도 2인분을 먹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첫 한 주 동안은 세탁소가 있는 쇼핑센터 안에 있는 '보쟁글'이라는 후라이드 치킨 체인점에서 정말로 2인분을 시켜서 정신 나간 듯이 허겁지겁 먹었다. 닭다리 두 개에 어른 손바닥만 한 허벅지와 가슴살 네 덩어리, 비스킷 두 개와 라지 콜슬로, 콜라 한 컵의 분량이다. 허기져서 먹은 것이 아니고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다 먹으려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저 쉬고 싶을 뿐이지 식욕이 솟구친다거나 주전부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몇 시간씩 서 있는 노동에 익숙해지고 예전과 똑같은 한 끼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만에 원래의 양으로 돌아간 것이다. 전업 주부일 때도 상대적으로 쉴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기 때문에 빈곤한 육체활동 덕분에 일일 일식이 가능한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한 끼가 '공장 노동자'의 하루를 아무런 무리 없이 버티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불과 삼주만에 손님이 별로 없는 세탁소 매장을 관리하는 자리로 일을 옮기면서 다시 예전과 비슷한 양의 열량 소비와 식단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잠시 동안의 일탈 같았던 경험은 잊혀졌다. 


몇 년 후에 나는 의료업계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게 되었고 새로 옮긴 클리닉에 적응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점심시간으로 역시 30분이 주어졌는데 몸과 마음이 피폐하다 보니 분주한 점심 식사 대신 근처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폰으로 소일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여겨졌다. 살짝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커피 한잔의 여유가 더 절실했던 것이다. 주말에는 예전처럼 한 끼나 두 끼를 먹었지만 적어도 주중 나흘 동안은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빵 한쪽이나 사과 반개를 먹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런 생활을 몇 달 동안이나 했다. 




라지 커피 한잔과 비스킷 반개가 먹은 음식의 전부인 나날들이 있었다.



당연히 평소보다 1~2 킬로그램 정도가 빠지게 되었지만 생각해보자, 몇 달이다. 몇 달 동안 2/3 가 넘는 시간을 거의 먹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1~2 킬로그램만 감량되었을 뿐 몸이 특별히 힘들지도 않고 생리적인 부분이나 체력면에서 특별히 달라진 점도 없었다. 새로 옮긴 클리닉 역시 예전 세탁소 배깅 작업 못지않게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로서 영어 장벽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나는 오랫동안 해온 일일 일식의 '다른 면'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얼마만큼의 음식을 섭취해야 적정한 것일까 라는 질문이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학교 라이드, '악기 맘'으로서 일주일에 며칠은 왕복 두세 시간이 넘는 아이들의 특별활동 라이드, 상대적으로 넓은 미국 집의 청소며 빨래며 음식 준비에 애완동물 케어,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서 업무, 수리 업무, 구매 업무- 우리 집은, 남편은 회사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서로 잘하는 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둘 다 별로 불만이 없다 -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맡은 청소년부 교사와 각종 봉사의 자리에서 회의하고 공부하고 밥하며 살던 때는 든든한 점심 한 끼와 나의 몸무게가 왠지 적당해 보였는데 위의 두 사례들은 뭔가 균형이 맞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즉, 열량 소비에 반해서 턱없이 부족한 음식물을 섭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은 거의 감소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질은 왕성했다는 것이다.      


일일 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루 2000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성인 여성으로서 기준 권장량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꽤 오랜동안 한 끼를 먹어도 보통 식사의 두배에 달하는 과식으로 일관했다. 물론 그저 관념에서 나온 결과라기보다 실제로 식사 때가 되면 허기졌고 또, 식사 후에 오랫동안 허기질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다. 주변에 일일 일식에 대해서 소개할 때도 한 끼만큼은 마음껏 아무 거나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 2000 칼로리라는 개념은 이제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먹었어도 한 끼에 2000 칼로리를 섭취하지도 못했지만 처음부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위의 두 가지 경험을 하면서 그 확신은 굳어졌다. 비타민 A의 하루 섭취 권장량이 2500 IU인데 실제로 내가 체감하는 필요량은 50000 IU (베타카로틴으로 섭취할 경우)인 것처럼 '세상이 얘기하는' 개념들은 많은 부분에서 경험을 거듭하며 깨지고 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나 임산부는 성장이 멈춘 성인과 달리 좀 더 세심한 기준에 의한 식단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노화의 길을 걷는 성인들은 각자의 활동량과 체질에 최적화된 식단이 중요하다. 자라난 환경이나 국가, 인종, 지역을 떠나서 정말로 나에게 맞는 식단 말이다. 한 번 정해졌다고 똑같은 것도 아니고 병을 얻거나 갱년기 등, 신체적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변형되고 또다시 맞춰가는 식단. 백세시대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큰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 이 것은 행복한 탐구생활이다. 나에게 맞고 내가 좋아하는 건강한 식단을 찾아서 공부하고 실험하는 하루하루는 말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나 신발을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쇼핑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틈을 내어 트렌드도 훑어보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상들도 체크하며 계속 변해가는 나의 체형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분위기에 맞는 스타일을 고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에게 생각보다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나의 실험적 결론은 우울하게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식탐이 별로 없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적게 먹어서 나의 전반적인 건강과 마일드한 노화를 꾀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일일 일식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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