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을 하고도 아직도 묻는 질문
이, 삼주 정도만 하려고 했던 일일 일식이 생각보다 적응도 쉽고 장점도 많아서 그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해볼까 하다가 십 년이 되었다. 일일 일식 초기에는 수월한 배변이라던지 가뿐한 컨디션이나 편한 속에 놀라워하다가 이내 체중 감량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과연 이대로 식단을 지속하면 내 체중은 얼마나 줄어드는 걸까. 이론 상으로는 원래 먹던 두 끼 중에 한 끼만을 섭취하니까 못해도 십 킬로그램쯤은 빠져야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평생을 부르짖던 50킬로그램의 벽을 드디어 돌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중학생 때 몸무게로 30년 만에 회귀하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좀 눈에 띄게 살이 내리고 감량이 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몇 달 되지 않아 4킬로그램 정도는 확실히 빠졌으니까 단순히 느낌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4~5 킬로그램, 그 정도가 다였다. 사실 4~5 킬로그램의 감량은 원래 정상체중 소유자였던 나에게 환골탈태의 효과를 주는 수치는 아니다. 다만 수치 상의 몸무게보다 몸에 살이 붙는 대사의 메커니즘이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는데 이 부분이 아주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즉, 실제 몸무게는 그냥저냥 날씬한 수준에 머물러서 요지부동이었지만 더 이상 빠지지 않는 대신 더 이상 찌지도 않았다. 하루에 한 끼 먹었으면서 왜 찌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갱년기 등등의 이유로 한 끼 양을 조금 줄였을 뿐 거의 십 년 동안 나는 그 한 끼에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먹어 왔다. 거의 매주 일요일, 교회 일과를 마치고 가족끼리 가서 먹곤 했던 18인치 라지 피자는 내가 처녀 시절에 한국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으나 살이 찔까 봐 참았던, 바로 그 치즈가 줄줄 흘러내리는 이태리 본고장의 맛이다. 직경이 거의 50 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대형 피자를 혼자서 반 정도까지 먹을 때도 많다. KFC 같은 후라이드 치킨 집에서 옆에 앉은 동네 친구들은 껍질 다 훑어내고 속살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할 때 나는 기름기와 고기 섭취를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이 어른 손바닥 만한 치킨 덩어리 세네 개에 콜슬로, 비스킷까지 부스럼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비운다. 그뿐인가. 객기를 한창 부릴 때는 뷔페식당에 가서 산더미 같은 빈 접시를 양산하며 온 식당을 뻔질나게 누비고 다녔고 더위가 한창인 여름밤 열 시에 애들 핑계 대고 마실 나가서 고열량 콜드스톤 아이스크림을 세 스쿱이나 푸짐하게 넣은 특대형 선데를 혼자서만 먹기도 했었다.
이 모든 먹방 행보들은 처녀 적은 물론이고 일일 일식을 하기 전까지는 후폭풍을 단단히 각오했어야 가능한 일들이었고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설사 비슷한 일들이 그 이전의 내 인생에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걱정스럽거나 매우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벌어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 곧 늘어난 체중과 살들을 부여잡고 씨름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유난히 먹은 음식에 따라 부피가 늘고 줄어드는 일이 심한 고무줄 체질 덕분에 평생 다이어트와 체중관리를 잊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심봤다' 수준의 인생 대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옷을 구입할 때마다 나의 고무줄 몸무게의 최하선에 맞춘 탓에 옷장에는 처음 입을 때까지 택을 때지 않은 옷들이 즐비하였다. 얼마나 몸매를 드러내느냐에 따라 강도 높은 다이어트가 선행되고 나서야 줄줄이 입고 나올 수 있었던 옷들. 그렇게 해를 넘기고 행어 위에서 잠만 자던 옷들도 많았다. 겨울이 되어 북동부의 시베리아 바람이 시작되면 먹는 양은 똑같은데 자연스럽게 체중은 더 늘기만 했고 어쩌다 사진이라도 찍으면 참담한 상황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고무줄 몸무게의 최하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비록 깡깡 마른 몸매는 아니었지만 한국 55 사이즈를 여유 있게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몸무게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주기적으로 강력 다이어트에 돌입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50 킬로그램을 돌파하지 못한 그 정도 몸무게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먹방 행렬을 이어 갔고 다른 불만 없이 십 년 씩이나 일일 일식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십이다. 지난 십 년 간의 먹방 퍼레이드는 이제 내게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세상 맛있는 음식을 다 경험해 봤다기보다는 백세 시대를 생각하며 좀 더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식단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강철 같던 소화능력에 약간의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목적과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기존의 세팅을 점검하고 바꿔가는 일은 미루지 않고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근의 나는 그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십 년 간의 내 일일 일식 역시 그런 식으로 조금씩 변형되어 왔다.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하루 한 끼를 고정적으로 유지하는 한 활동량과 몸무게, 섭취 열량 사이에 함수 관계가 성립한다. 같은 양을 유지하는 한 즉, 같은 양의 열량 섭취, 같은 양의 열량 소비를 하는 한 같은 몸무게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정확한 수치는 두 개의 값에 무엇을 대입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일일 일식을 시작하면 얼마 되지 않아 그 균형 점에 도달하게 되고 이후로는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균형은 갱년기나 일시적인 질병, 극심한 스트레스와 같은 상황들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또 일정 시기 후에 살짝 조정에 들어가면 될 일이다. 처음부터 무리한 수치와 형태보다 꾸준히 적용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다 보면 본인의 생활패턴과 타협할 수 있는 몸의 부피가 정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먹자마자 지방으로 저장되어 옆구리와 엉덩이 밑에 붙어버린 살들을 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일일 일식은 오랫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개념의 몸무게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제안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분명히 내가 생각했던 수치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만큼 일일 일식은 내가 평생 시도하고 노력해온 다른 체중감량용 다이어트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체중 감량의 관점에서 일일 일식에 접근한다면 수치적으로 얼마를 감량할 수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요요현상이다. 다음 편에서는 일일 일식과 요요현상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