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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될뻔 Sep 24. 2021

스무 살, 뉴욕에 가다.

맥도날드에서 겪은 좌절

 고등학생이 된 이후 매 해 1월 1일이 되면 새해의 목표를 정하고 중장기 목표를 점검하며 목표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곤 했었다. 그때 적었던 리스트 중 하나가 '내 이름으로 된 책 쓰기'와 '혼자 힘으로 뉴욕 여행 가기'였는데, 전자의 경우는 좀 더 먼 미래의 목표로 설정했었고 후자의 경우는 대학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목표 중 하나였다.


 부모님의 울타리 밑에서 학교에 다녔다면 쉽게 마음먹지 못했을 테지만, 갓 스무 살이 되면서 대학에 와 홀로서기를 한 나로서는 크게 겁나는 게 없었던 듯하다. 어차피 서울에서도 혼자, 지구 반대편에 가더라도 혼자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 보던 내가 제일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중 하나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Seattle)'이었다. 영화 제목과는 달리 뉴욕에서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여자 주인공 멕 라이언분이 친구와 함께 즐겨보던 '러브 어페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한 것을 보고 톰 행크스 분과 만날 약속 장소로 같은 장소를 정한 장면이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로맨틱하고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어릴 땐 청주라는 도시에서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일은 정말 손에 꼽던 터라,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자유롭게 써 보고 외국인들과 대화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에 가면 꼭 내 힘으로 뉴욕 여행을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 매년 크리스마스에 빠뜨리지 않고 보는 영화인 '나 홀로 집에 (Home Alone)'에서 주인공 매컬리 컬킨이 부모님 없이 홀로 투숙했던 플라자 호텔! 그곳에 가보는 것! 내 영어 이름인 Christine을 따게 된 이유인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뮤지컬을 원어로 감상하는 것! 이러한 이유로 나의 첫 홀로 여행은 꼭 뉴욕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 1학년 때 받게 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가지고 겨울방학에 맞춰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가보고 싶은 장소들과 코스를 탐색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 다니는 유학생이 방학 기간 동안 단기 임대한 Sublet을 구해 한 달 동안 뉴욕에서 기거할 장소를 물색해 놓은 후, 공항에서 숙소까지 갈 셔틀버스 차편까지 다 예매를 한 나는 득의양양한 마음으로 뉴욕아 기다려라 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나의 자신만만했던 생각과는 달리, JFK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했던 셔틀 서비스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당해 100불 넘게 뜯기고 난 뒤, 길거리에서 험한 욕을 하며 싸워대는 뉴요커를 만나고 나서 뉴욕이 얼마나 험한 정글 같은 도시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기가 죽어 의기소침해질 뻔하다가 타임스퀘어에 제일 먼저 가서 뮤지컬 티켓도 끊고 관광도 할 겸 가서 허기를 달래려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나는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처음 맥도날드에 가서 주문을 하는 게 어렵다면 유튜브에 'Ordering foods at Mcdonalds"라고 검색을 해 보면 그만이겠지만, 나에게 맥도날드 주문은 영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갖은 대화 매뉴얼을 버무려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었다.


나 : "Hello"

점원 : "Welcome to Mcdonalds, What do you like to order?"

나 : "Uh..., I want to have a Big Mac Set"

점원 : "One Big Mac with Combo meal?"

나: (아 여긴 Combo라고 하는구나..)"Yes, Yes"

점원: Any ketchup or salt?

나: (뭐?? Catch up for sol? 뭔 소리야... 하..) Pardon?

점원 : Ketchup or salt?

나:(이런 건 내 예상에 없었는데..) Sorry?


 나중에 그 점원이 천천히 발음을 하며 나에게 몇 번을 다그친 후에야 케첩이나 소금 중 뭐가 필요하냐는 질문이란 걸 알게 되었고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빅맥 세트를 먹는 내내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제일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영어였고 영어 성적도 좋았는데 내가 뉴욕에 와서 맥도날드 점원이 하는 저런 간단한 말 한마디를 못 알아들어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하는 생각에 햄버거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교과서 영어랑 현실 영어는 다른거였구나...


 그렇지만 이런 여러 가지 좌절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겨울은 너무나 화려하고 눈부셨고, 미술관과 뮤지컬, 링컨센터에서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내 정신을 빼놓을 온갖 화려한 볼거리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곧 잊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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