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박준영 이정경 한현호.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구름사이로햇빛

휴직을 했다.

우려했던 것과 같이 오후까지 늦잠을 잔다거나, 밤새도록 게임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간 출퇴근에 길들여진 몸은 아침 먹을 시간에 일어나고 다음날 출근에 피곤하지 않을 시간에 눈이 감겼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나만의 시간은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짠 음식에 길들여져서 슴슴한 맛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 혀처럼, 편안함 속에서 내 몸은 자꾸만 불안함을 좇는다. 속박되지 않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팔다리가 어색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나는 오래전 이미 한 번 보았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다시 보았다. 불안으로 동요하며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이십 대를 마주하고 보내줄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드라마 속 피아니스트 박준영은 몇 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회를 가지다 안식년을 보내러 한국으로 돌아온다. 드라마 속에서 명문대로 나오는 서령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채송아는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4수 끝에 서령대 음대로 재진학하여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미래를 위해 분투한다. 둘은 박준영을 후원하는 경후문화재단의 인턴과 아티스트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재능에 대한 열등감과 '급'을 나누는 사람들의 잔인한 시선은 두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다.


박준영과 15년간 함께 우정을 나눈 이정경은 경후그룹의 후계자이자 경후문화재단 이사이며, 유년기에 천재로 칭송받았던, 겉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다. 서령대 음대 교수 지원을 위해 줄리어드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정경은, 어린 시절의 재능이 사라져 버린 현재 빛나는 자신의 친구 박준영을 질투하며, 그의 재능에 대한 동경과 그의 마음을 얻고 싶은 마음을 혼동한다. 이정경을 흔들림 없이 지난 십 년간 아낌없이 사랑한 첼리스트 한현호는 서령대 음대를 수석입학하고 수석졸업한 재원이지만, 미국 유학 후에도 오케스트라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레슨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는 현실에 좌절한다.


그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 또한 잔잔하고 아름답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는 재능과 노력,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열등감과 질투심, 그리고 그것들을 딛고 단단해지기 위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그것을 위해서 때로는 절절한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아는 강함과 용기에 대한 것이었다.


극의 끝에서 박준영은 매 리사이틀의 공연료를 모두 들이부어도 끝나지 않는 아버지의 습관 같은 빚보증에 더 이상 희생되지 않기 위해 어머니와 솔직하게 대화한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최대한의 점수를 이끌어내기 위한 연주가 아닌, 스스로 하고 싶은 연주를 하기 위해 15년간의 습관과도 같은 곡 트로이메라이를 끊어내고 새롭게 브람스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정경은 자신을 수단으로 삼는 스승과의 관계가 망가진 후 그녀의 도움으로 얻으려 했던 서령대 음대 교수직 대신 재능 있는 학생을 지도하는 멘토가 된다. 그녀는 늘 배경에 힘입어 나아갔지만 떨어질 것이 분명한 서령대 음대 교수 지원을 위한 독주회에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며 홀로 선다. 한현호는 미국 오케스트라에 합격하여 미국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마음과 사랑에 대해 깨달은 이정경과 재회한다. 채송아는 전기 대학원 시험에 자신의 힘으로 합격하지만 자신을 끊임없이 상처 입히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해 본, 그래서 아티스트를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 경후문화재단에서 일하게 된다.


나는 수학과 물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에 대한 대중의 경외로부터 비롯된 시선이 녹아있었던 책 속의 글들은, 그리고 사람들의 견해는 그토록 어린 나에게 이미 선택받은 소수는 정해져 있다는 슬픈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채송아가 극 중에서 반복적으로 듣는, 그녀를 낮잡아보는 말들, 경멸 어린 말들, 의도 없이 상처 주는 말들을 나 역시 모두 다 들어보았다. 그럼에도 처음 이 드라마를 보았을 때는 채송아에게 공감하기보다 4수 끝에 끝까지 원하는 길을 가볼 수 있었던 드라마 속 그녀의 부모님의 재력, 배경에 부러움을 느꼈었다. 더 이상 장학금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취직을 선택했던 스물세 살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드라마에서의 대사와 같이, '내가 제일 작은 순간이 크레셴도가 시작되는 순간'이며, 나는 사랑받기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것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부정할 수 없이, 나는 여전히 수학을 사랑한다. 물리를 배웠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난해한 문제들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는 쾌감의 과정을, 치열하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나의 부족한 재능과 환경으로 인해 내 사랑을 포기 '당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 역시도,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 역시도 수학과 물리가 그 기반에 있다. 손에 꽉 쥐고 있었던 무언가가 펼쳐져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계속 주먹을 쥐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을 테다. 때로는 힘을 빼는 것이 힘을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무엇을 사랑할지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며 삶 그 자체라는 깨달음에, 여름 볕 속에 잠깐 스친 바람처럼, 그렇게 설레며 잠시 닿았다.


드라마 속 채송아의 대사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다. 브람스는 Frei Aber Einsam(자유롭고 고독하게)이라는 제목 대신 Frei Aber Froh(자유롭고 행복하게)를 더 선호했다고. 불안과 자기 연민의 고독 속에서 빠져나와 올해의 남은 여름날을 아낌없이 즐길 수 있기를. 내 불안했던 20대여, 이제 정말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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