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by 최선생님

새벽 5시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미비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저번 주에 기업분석 공모전 및 연수를 다녀오느라 밀린 과업들이 있었거든요. 창업 준비에 필요한 것들과 다니고 있는 회사의 기획서가 많이 밀려있는 참입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은 소호 사무실로, 학교 측의 배려로 학생창업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23시가 되면 경비 아저씨께서 순찰하러 다니시면서 복도의 불들을 끄시는데, 물을 많이 마시다 보니 자주 화장실을 다니는 저는 어두운 복도를 매일 보지만 참 낯설고 무섭습니다. 귀신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거든요. 어쩌면 스릴러, 호러, 좀비 영화를 많이 본 부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번 주,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모사업이 하나 나오게 되면서 추가된 일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연 생태와 결합하여 프로그램들을 짜고 일정을 조율하며 예산 산출을 하여야 하는데 하기 싫은 건 둘째치고 분량도 많고 인력도 부족하며 양이 너무 많습니다. 쉬고 싶은데 사 측에선 빠른 시일 내에 완성본을 요구하기 때문에 쉴 시간도 없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수면시간이 극도로 줄어들고 밤새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상 신호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눈이 퀭해짐은 물론, 경련이 일어나고 한 번씩 코피가 새면서 심할 때는 두통까지 오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는 우측 전정기관 이상 징후로 균형장애까지 생겨 참 많이 고생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휴식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집안 사정을 아는 저로선 손 벌릴 수 없으니 자급자족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요. 하고 싶은 것은 일하는 시간들을 더욱 쪼개어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상의 반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쯤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종결될 수 있을까요? 언제가 와야 공모사업이 언제 나오는지, 어떻게 써야 할지 분석해야 하는 이 시간들이 끝이 나올 수 있을까요. 휴식이 필요한 고통스러운 일상에 외로움까지 더해집니다.


만약 이렇게 땀 흘리고 눈물겨운 생활을 버텨내어도 제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한 분야만 팠는데 이게 제 무덤이 되면 어떡하나요. 짙은 어둠 속을 헤매고 동아줄을 잡았는데 썩은 동아줄이면 저는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가요. 외로운 마음에 한숨까지 더해집니다.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최근에는 알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의지도, 자존감도 없는 그저 약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됩니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아침에 집을 나서고 사람들의 출근길을 보며 집에 돌아갈 때는 이 생각이 더욱 굳건해집니다.


새벽 5시는 마법 같은 시간입니다. 일에 집중이 안 되는 대신 흘러간 기억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부터 점점 멀리 있는 일들이 스쳐가는데, 장면들의 모든 걸 기억하진 못하나, 그저 가식 없는 웃음을 띤 제 모습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아마 다시는 행복했었던 순간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쁨의 순간들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행복의 총량도 줄어들고 빈도도 줄어드는 재미없고 힘든 일상들의 반복입니다.


생각해보면 1년 전, 2년 전, 그리고 몇 년 전에 생각했었던 스물여섯의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착실히 앞 날을 모색할 것이라는 큰 그림의 청사진만이 있었습니다. 이 구상에는 불행의 기운은 침투할 틈조차 없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바라왔지만 평범함이 사실 가장 어렵다는 것 또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작가의 꿈은 이루진 못하여도 예술같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옥탑방 하나를 월세로 얻고, 페인트도 직접 칠하면서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장면들을 사진으로 인화하여 한쪽 면을 도배해보며, 저녁에는 기타를 치고 새벽에는 도란도란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돈은 얼마를 벌든 간에 피아노도 사서 건반을 놀려보고 싶었고 비싼 유화물감과 팔레트, 이젤을 사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따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20장 분량의 종이 쪼가리에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길게 늘어뜨려서 불평불만을 하지만 조금만 쉬고 다시 기획서를 작성하러 가야 합니다. 그저 오늘의 이 노력들이 훗날 헛되이지 않기를 담배 피우며 보는 짙은 하늘에 다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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