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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Feb 13. 2019

두 마음을 갖은 나

이성적인 어른과 감성적인 아이에 길고 긴 싸움

시험이 다가오는 어느 날 나의 두 자아가 내 안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오늘, 어제, 그저께도 공부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꼭 놀 거야!"


"곧 있으면 시험기간이잖아. "나"는 하루도 쉴 틈 없이 열심히 공부해야 돼!"


누구나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그 순간을 위해 노력을 쏟아내고 있을 때 잠시 제쳐두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나의 두 마음이 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이럴 때 보면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이론이 생각나곤 한다.


나에게는 어떠한 성취를 위해 강요하며 노력하게 만드는 '초자아'가 있다 그게 내가 원하는 선택이 아닐지라도. 반면 나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자아'도 있다. 그것은 마치 저 두 마음에 싸움과 같다. 분명 둘 다 내가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적을 잘 받는 것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분명 그 가운데에는 선택하는 '나 자신이' 있다.


학생이라면 학생의 본부를 다 하기 위해 시험공부를 선택한다 그 뒤에는 꼭 쉴 거라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그 약속이, 아니 그 조건이 둘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다가올 미래보단 현재에 나 자신을 돌보고 싶은 감성적인 나의 아이는 내 감정이 원활하게 지켜지기 위해 최소한의 스트레스를 선택한다. 감성적인 아이가 나의 내면에 가장 힘이 세다면 그 순간 공부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어른은 어떨까?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을 노력하게 만드는 어른은 내 목표를 위해 움직이게 한다. 사실 감정을 억누르고 노력하게 하는 '동기'가 없다면 분명 나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동기는 정말 중요한 요소지만 함정이기도 하다.


교수님께서 한 환자에 상담을 정리해서 가져오신 적이 있다. 그 환자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5년 만에 밑바닥부터 한 회사의 회장 비서까지 승진했다. 그러나 그 환자는 불면증과 식욕이 없는 증상으로 시작해 자신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진단 결과 두 가지의 결과가 있었지만 그 한 가지가 자신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감성적인 아이를 돌보지 않고 이성적인 어른이 지배했을 때의 경우다.


우리의 내면은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선택하기 전에 두 마음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충돌이 일어난다. 마치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나를 볼 때 우울감이나 무력함을 느낄 수 있는 것과 피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나 자신은 누구보다 소중하다. 그러기에 나를 위해 두 마음이 움직이고 선택을 강요한다. 그만큼 내면에 큰 충돌이 일어날지라도 항상 두 마음은 서로의 선택이 옮다고 주장하며 나를 보호하려 한다. 그 선택이 나 자신을 다치게 하더라도 옮다고 믿으니까. 다행인 것은 두 아이를 바라보며 돌봐줄 수 있는 내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선택 앞에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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