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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Feb 13. 2022

친한 동생의 방문과 정전

2018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코이카 동기였던 동생 재영이가 나를 보러 후에로 왔다! 몽골에서 가족같이 지내던 친한 동생이었고, 외국에 살면서 가족 말고 지인이 우리 집에 놀러 온 건 처음이어서 살짝 들떴다. 학기 중이라 내가 휴가를 낼 수 없어 주말에만 같이 놀 수 있고 같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도 못 다녀서 아쉬웠다. 그래도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와 줬는데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잘 대접하고 잘 놀아야지! 생각하며 집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재영이를 맞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짐을 풀자마자 전기가 나가버렸다! 하필이면 저녁에 도착해서 어두컴컴할 때였다. 아... 내 눈앞도 캄캄해졌다. 작년 여름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집에 전기나 물이 끊기는 것을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아주 가끔 잠깐 정전이 돼도 금방 전기가 돌아오니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정전도 자주 지만 꽤 오랜 시간 전기나 물이 안 들어올 때도 많다. 물이 끊기는 건 이유를 모르겠지만, 정전이 자주 되는 건 전압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몽골에 있을 때도 그랬다. 어떤 때는 정말 하루 종일 전기가 안 들어올 때도 있었다. 물도 마찬가지로 잘 쓰다가 갑자기 끊길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지난달 공과금을 냈는데 왜 안 들어오지? 뭐 문제 생겼나? 집주인이나 관리인한테 말해야 하나? 근데 전기가 갑자기 나갔다는 게 몽골어로 뭐지... 엄마 아빠 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일이 워낙 자주 발생하니 곧 익숙해졌다. 저녁에 텔레비전 보다가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아 또 그러네. 내일이면 들어오겠지 뭐' 하고 손전등을 켜고 대충 씻은 다음 빨리 잤다. 전기는 그렇다 쳐도 물이 안 나오는 건 좀 곤란했지만, 낮에 끊기면 카페로 잠깐 피신을 가고 저녁에 끊기면 주변 코이카 단원들에게 지금 집에 물이 나오는지 물어본 후 나온다고 하면 짐을 챙겨서 그 집으로 갔다. 몽골에서 잠깐의 정전과 단수는 아주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딱 한 번,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네 물이 3일 동안 끊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정말 불편했다. 단수 첫날에는 그러려니 하고 마트에서 5L짜리 물을 사 놨는데, 이틀째에도 물이 안 나와서 당황했다. 요리도 씻는 것도 못했다. 이틀째에는 마트에 물도 다 떨어졌다. 문제는 우리 아파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단수여서 근처 코이카 단원 집으로 피신할 수도 없었다. 18L짜리 물통을 주문하려고 해도 이미 다 매진이었다. 단수 삼 일째 되자 어느 업체에서 온 건지 아파트에 물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왔고 미리 물을 주문한 주민들이 받아갔는데, 나는 그런 정보를 몰라 주문을 못해서 답답했다. 다행히 삼 일째 늦은 밤에 물이 다시 들어왔다.


아무튼, 이렇게 정전과 단수는 이미 많이 겪어서 베트남에서도 별로 불편하지 않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겨울이 8~9개월인 건조하고 추운 나라 몽골, 7월 여름에도 건조해서 땀도 안 나고 햇빛이 없으면 시원한 몽골과 베트남은 전혀 딴판이었다. 다행히 베트남에서 단수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 정전이 되었을 때 정말 지옥을 경험했다.


2017년 6월인가 7월의 한여름이었다. 밤에도 기온이 30도 가까이 되고 체감 온도는 더 높았다. 밤에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다. 창밖을 보니 이 일대가 모두 깜깜한 게 동네 전기가 다 나간 듯했다. '금방 다시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은 10분 정도가 지나자 '제발 빨리 들어와라'로 바뀌었다. 기온 자체가 사우나같이 덥고 습기 찬데, 나는 방금 머리를 감아서 더 축축했다. 게다가 땀도 주룩주룩 났다. 너무너무 더웠다. 등은 내 머리에서 흐른 물기와 땀으로 다 젖어 버렸다. 그런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휴대용 미니 선풍기를 틀었지만 그걸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한 무더위였다. 그때는 동기인 김 선생님과 잠깐 같이 살고 있을 때였는데 김 선생님도 탈진할 듯이 힘들어하셨다. 같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정말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호텔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이미 밤 10시가 넘어버려 호텔을 예약할 수 없었다. 호텔로 직접 가려고 해도 동네 호텔도 전기가 나간 걸 집에서 볼 수 있었고, 어느 지역까지 정전이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창문을 모두 열어 놓았다. 평소에는 벌레와 모기 들어올까 봐 환기시킬 때 빼고는 절대 하지 않았던 행동이지만, 그때는 창문이라도 모두 안 열어 놓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아파트 문을 열어 보니 다른 주민들은 대문도 다 열어 놓고 있었다. 우리는 대문을 열어 놓고 자는 건 무서워서 창문만 열었다. 근데 열어 놔도 죽을 것 같았다. 닫은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창문을 열고 모기장을 친 침대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지옥이었다. 머리는 하나도 마르지 않아 축축하지, 미친 듯이 덥고 땀나고 눅눅하지... 침대는 금새 물과 땀으로 젖어 버렸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해서 잠은 자야 하는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흘러서 탈진할까 봐 물을 계속 마셨다. 그런데 물을 마시니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고 잠도 자기 힘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불이 안 들어와 무서웠다. 그래서 물을 참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숨을 쉬기가 힘들고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탈진해서 죽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4시간 동안 전기가 안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느껴지는 찬바람에 눈이 떠졌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새벽 5시였다. 다행히 새벽이 지나기 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그때 잠을 잔 게 아닌 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기절했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베트남에서 전기가 안 들어온다는 건, 특히 어디 가지도 못하는 밤에 그런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운 날 에어컨과 선풍기의 소중함을 아주 확실히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다. 그런데 하필 재영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첫날 정전이 된 것이다!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리고 천둥번개가 쳐서 정전이 된 듯싶었다. 다행히 늦은 저녁은 아니었고 비가 오는 날이라 덥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핸드폰 호텔 앱을 열어 호텔을 찾아봤다. 재영이는 그냥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지난번처럼 새벽에나 전기가 들어올까 봐 불안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이번에는 30분도 안 되어 전기가 들어왔다.


다음 날 우리는 같이 신나게 놀았다. 후에 왕궁도 놀러 가고, 왕궁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가고 발마사지도 받고, 야시장도 구경했다. 이미 왕궁은 2017년에 네 번이나 갔다 왔었지만 재영이와 함께 가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재영이가 찾아본 브런치 맛집에 갔다. 후에에 브런치 식당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역시 맛집은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들이 잘 아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브런치를 엄청 좋아했는데, 왜 후에에서 브런치 식당을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검색해보니 인터넷에서 정말 유명한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와 샌드위치도 있었다! 덕분에 단골 식당을 찾게 되었다.


맛있는 브런치!


저녁에는 흐엉 강이 다 보이는 루프탑 카페에 가서 분위기 있게 야경을 즐겼다. 재영이와 같이 놀 때는 누군가의 선생님, 동료 교사가 아닌 그냥 나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2년 전 몽골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카페에서 바라본 흐엉 강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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