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1학기 개강은 3월 중순이었다. 후에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한국어 학원은 없다. 그래서 후에 세종학당은 항상 인기가 많다. 학기 시작 전 등록을 받는 기간만 되면 후에 세종학당 운영요원 선생님이신 늉 선생님은 등록 신청을 받고 전화 상담을 하느라 바쁘시다. 그래서 그 외의 업무는 파견 교원들이 나눠서 했다.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 반편성 시험을 보고, 시간표를 짜고 반별로 강의 계획서를 만들었다. 세종학당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반편성 시험을 보고 반을 정한다. 반편성 시험은 하루 날을 잡아 신입생 전부가 동시에 보는 것이 원칙인데, 우리는 회사일과 학교 일 등으로 시간이 안 맞는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시험을 보게 해 주었다. 그래서 1학기 개강 준비와 수업 준비를 하는 틈틈이 반편성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나도 꽤 바빠졌다. 반편성이 끝나고 시간표도 확정이 된 후에는 출석부를 만들었다. 이번 학기도 170명이 넘는 학생들이 후에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세종한국어1,3,4,7권을 가르치게 되었다. 세종한국어는 1권부터 4권까지가 초급, 5권부터 8권까지가 중급인데, 5권은 기준만 중급이고 문법 수준은 초급이다. 학생들의 실력도 초급에 가깝다. 2017년에는 1권부터 5권까지만 가르쳤었다. 실제적으로 세종학당에서 중급 수준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몽골에서 중급 수준의 수업을 하기는 했었지만 많지 않았고, 또 오랜만에 중급 수업이라 좀 긴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7권을 듣는 학생들이 거의 지난 학기부터 가르쳐 온 학생들이었고, 세종한국어 1권부터 꾸준히 공부하고 학당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가까운 학생들이었기에 수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되었다.
1학기 첫 수업은 월요일 아침에 있는 세종한국어 1권 반 수업이었다. 다른 수업도 첫 시작 때는 항상 긴장되지만 1권 수업은 더 그렇다. 학생들과 만나는 것도 처음,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처음을 같이 시작한다는 점에서 설레기도 하다. 1권 수업을 할 때 가장 좋은 순간은 역시 처음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후에는 시골에 가까운 곳이라 한국 사람을 볼 일이 거의 없다. 학생들에게는 내가 미디어가 아닌 실제로 직접 만나는 첫 한국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최소 1학기를 이끌어 줄 한국어 선생님이기에 첫 수업에 학생들이 나에게 보내는 눈빛은 호기심과 설렘과 긴장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급이 높아질수록 이런 눈빛을 보기 힘들다. 이날도 역시 그런 눈빛을 한껏 받으며 기분 좋게 인사를 했다.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 못 한 학생도 있고, 한국어는 배우지 않았어도 한류 영향으로 이런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이해하는 학생도 있다. 이해 못 한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고 이해한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하며 인사를 받아 준다. 보통 후자의 경우 한국어에도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수업 이해도 빠르고 발음도 좋다. 이 반에는 맞인사를 해 주는 학생이 꽤 있다. 앞으로 수업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의 반응을 본 후 3초 정도 가만히 웃기만 하다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말하니 학생들이 작은 소리로 감탄하며 웃는다. 나는 박수를 쳤다. 학생들한테 '베트남어 잘했죠? 여러분도 빨리 박수 쳐 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박수를 유도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학생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건 첫 수업을 시작할 때 나만의 아이스브레이킹(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긴장도 풀어지고 한국어 수업과 한국어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첫인상도 좋아진다. 물론 한국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외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다국적이기도 하고, 단일 국적 학급을 가르칠 때도 기관에서 한국어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원어민 한국어 선생님은 수업 때 한국어만 혹은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외국어로 말할 때는 거의 없다. 다만 이렇게 수업 분위기를 띄울 때는 학생들 모국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생들 긴장이 풀어지면 출석을 부르는데,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학생 앞으로 가서 직접 이름을 물어본다. 물론 학생은 "이름이 뭐예요?"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출석부에 있는 명단을 가리키며 묻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무슨 질문을 한 건지 눈치채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름을 이야기하면 반갑다고 말하며 악수를 한다.
인사 후에는 학생의 이름을 한국어로 책이나 공책에 써 준다. 별거 아닌데도 학생들은 낯선 외국어로 쓴 자기 이름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름을 써 주면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이 된다. 이렇게 20명 가까이 되는 학생에게 다 인사를 하고 한국어로 이름을 써 주고 나면 교실 분위기가 아주 좋아진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세 문장과 사람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 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출석을 다 부르고 나니 학생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반 학생들은 친화력도 좋은지 내가 한바퀴를 돌고 나니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벌써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스님 옷을 입은 학생이었다. 나이는 대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스님인 걸까? 특이하다. 특이한 학생이 있을수록 수업은 재미있다. 이번 1권 반도 이 학생 덕분에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는 개강식 준비로 바빴다. 개강식은 항상 학기 첫 수업이 시작하는 날 오후에 한다. 오후 수업은 5시 30분에 시작하고 개강식은 5시에 시작한다. 오후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개강식을 짧게 한 후 각자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시작한다. 이날 개강식에서는 세종학당재단에서 특별히 보내 준 파일철을 깜짝 선물로 나눠 줬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았다.
수업이 끝난 후 학당장님과 다른 교원들과 같이 개강 회식을 했다. 새로 생긴 한국 식당에서 양념 숯불구이를 먹었다. 맛은 맛있으면서도 한국에서 먹던 맛은 아니라 이질적이었지만, 숯불 덮개(?)에 한국어가 있어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