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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4. 2022

베트남에서 보낸 단오

2018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후에 세종학당은 한 학기에 한 번씩 문화 행사를 한다. 학기 중에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말하기 대회, 글짓기 대회, 수료식 등 다른 행사와 같이 진행한다. 2018년 1학기 문화행사도 수료식 때 하기로 했다. 주제는 '단오'였다. 행사 내용은 이렇다. 수료식이 끝난 후 먼저 한국의 단오에 대해 설명하고 상품이 걸린 퀴즈를 낸다. 그리고 단오선(부채)과 창포꽃 모양 비누를 만들기 체험, 허벅지 씨름을 한다. 간식으로는 전통 차인 오미자 차와 수정과, 수리취떡을 준비한다. 한복 입기 체험도 한다.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우리 파견 교원들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행사장 대여 등 현지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은 후에 세종학당의 운영기관인 BBB 코리아에서 준비했고, 행사 때도 직접 후에로 오셔서 같이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전국 대회라서 규모가 큰 글짓기 대회 말고는 BBB에서 직접 행사를 진행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이렇게 특별하게 진행하는 이유는 후에 세종학당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함께 해 온 학당장님이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그만두시게 되 송별회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학기부터는 BBB 코리아 국장님이 학당장이 되셔서 한국에서 학당장 업무를 하시게 되었다.


행사 날이 되었다. 수료식 개회사, 우수학습자 시상, 수료증 배부 등 수료식 행사가 끝나고 단오 행사가 시작되었다. 베트남에도 단오는 있지만 한국의 단오와 다르다. 베트남의 단오는 '벌레를 죽이는 날'이다. 1년 중에서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인 음력 5월 5일, 곧 시작될 여름에 대비해 벌레를 죽여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날 베트남 사람들은 찹쌀로 빚은 밥과 술을 먹고, 벌레가 싫어한다고 알려진 신 맛 나는 과일을 먹는다고 한다(정말로 벌레가 신 맛을 싫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단오는 풍요와 풍작을 기원하는 날이다. 단옷날에는 초여름의 더위를 이길 수 있게 이웃에게 단오선이라는 선물하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수리취떡을 먹었다. 그리고 씨름과 그네 타기 등 전통놀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게 재액을 방지하는 의미라는데, 벌레로 인한 질병을 재액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이 부분은 베트남의 단오와 비슷한 것 같다.


문화행사 단체사진


단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퀴즈가 시작되었다. 퀴즈는 진행자가 말로 냈지만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쓰여 있는 PPT 화면도 같이 보여줬기 때문에 초급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었다. 질문이 끝나면 재빨리 손을 드는 학생 중 진행자가 지목한 학생이 정답을 말할 기회를 얻었다. "단옷날이 되면 이웃에게 선물하는 부채 이름은 무엇일까요?" 진행자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저요!", "여기요!", "단오선!"이라는 말이 터졌다. 한 명을 지목하기가 힘들었는데, 내가 진행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퀴즈가 끝나고 단오 체험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단오선 만들기 팀과 창포꽃 비누 만들기 두 팀으로 나뉘었다. 단오선 만들기는 아무것도 안 그려진 부채에 붓펜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고, 창포꽃 비누는 고무찰흙 같은 비누를 손으로 주물럭 거리며 창포꽃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양을 잡고 햇볕에 몇 시간 이상을 말리면 비누가 되었다. 행사 전에 나도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 거품은 잘 나지 않았지만 개성 있는 모양의 비누를 만드는 것이 좋았고 아이 때처럼 찰흙 놀이를 하는 기분도 들어 재미있었다. 그런데 비누 만들기는 과정이 간단하다 보니 학생들한테는 단오선 쪽이 인기가 더 많았다. 비누를 빨리 끝난 학생은 단오선 쪽으로 가기도 했다. 몇몇 학생들은 동양화 화가처럼 멋지고 분위기 있는 그림을 그렸다.


단오 축제


만들기 체험이 끝나고 허벅지 씨름이 시작됐다. 허벅지 씨름을 원하는 학생 두 명이 무대 위로 올라가 허벅지 씨름을 하고, 이긴 학생은 상품을 받았다. 내성적인 학생들이 많아서 지원하는 학생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웬걸. 일단 두 명이 시작하니 하고 싶다는 학생이 또 나오고, 행사장이 마치 한국 대 일본 축구 경기를 하는 것 같이 달아올랐다. 구경하는 학생들은 자기 친구가 아닌 누군지도 모를 학생을 응원했다. 지켜보는 나도 꽤 긴장감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허벅지 씨름(출처: 런닝맨)


허벅지 씨름이 끝나고 한복 입기 체험도 하고 학당장님 송별회도 끝났다. 나는 수료한 학생들과 행사장에서, 후에 세종학당 교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번 수료식도 이렇게 잘 끝났다. 수료식이 재미있게 잘 끝나서 후련했지만 동시에 조금 걱정도 들었다. 2주 뒤에는 2학기가 바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당에 변화가 많다. 학당장님도 바뀌고 운영요원이 한 분 새로 들어온다. 이제까지는 운영요원인 늉 선생님 혼자 많은 일을 담당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나와 김 선생님도 학사 관련 행정 업무를 좀 하기는 했지만, 베트남어로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예산 관련 일은 운영요원이 해야 해서 늉 선생님의 업무가 많았다.


새로 오는 운영요원은 후에 세종학당 학생이기도 한 린짱이었다. 린짱은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학생이었다. 이전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학생들은 몇 년 동안 꾸준히 수업을 듣고 후에 세종학당 일이라면 언제가 되었든 발 벗고 나서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린짱은 내가 후에 세종학당에 처음 온 날부터 계속 가르쳐 온 학생이다. 첫 만남 때 린짱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말하세요. 도와드릴게요."


린짱은 정말로 나와 김 선생님을 잘 도와줬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는 현지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언어가 안 되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학생들에게는 미안해서 개인적인 부탁을 안 하는데, 린짱을 포함한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학생들은 본인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는 도와주길 원했다. 자신들이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린짱이 동료가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면서도, 아직 한국어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은 실력이 안 되는데 늉 선생님을 도와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린짱 덕분에 우리는 일이 편해졌다. 나는 린짱과 동료가 되어 정말 좋았고 파견 종료 때까지 후에 세종학당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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