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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9. 2022

스님 학생의 절에 초대 받다

2018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부처님 오신 날이 되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베트남도 역시 부처님 오신 날을 챙긴다. 종교가 없는 나는 여느 때처럼 부처님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갈 예정이었는데, 학생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학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1학기 때 1권 아침반을 공부한 학생 파 씨였다.


"선생님, 오늘 우리 프엉 씨 파고다에 갈 거예요. 같이 가요?"


파고다? 파고다가 뭐지? 아, 사원이구나. 아침반 스님 학생인 프엉 씨의 절에 간다는 말이었다. 절에서 행사를 한다고 한다. 잠시 고민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수업을 하고 있을 때라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놀러 가는 것이라도 학생과 만나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아프다거나 할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거절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절에서 하는 행사에 나를 초대해 준 것도 고마웠고, 베트남의 절이 궁금하기도 해서 고민이 되었다. 나는 낯선 문화를 체험하는 일을 좋아한다. 몽골에 살 때도 몽골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의 절과는 분위기가 정말 달라서 신기했었다. 베트남도 같은 불교지만 베트남 절만의 특별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행사 날이고 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


고민하던 중에 파 씨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얼떨결에 가겠다고 했다. 파 씨는 이미 나를 데리러 오는 중이라고 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내려가니 나를 데리러 온 학생 두 명이 이미 아파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학생의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가는데 우리 아파트 옆 옆 건물이 이상했다. 관공서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여기서도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하나 싶었는데, 그렇다기에는 행사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달리던 오토바이도 일제히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건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목적지가 있었기에 구경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가던 길을 갔다. 나중에 절에서 놀 때 학생들이 뉴스를 보여 줬는데, 이때 마약범이 관공서에 들어가 인질을 잡고 칼로 위협을 하던 상황이라고 한다. 인질극 대치 중에 결국 경찰이 총을 쏴서 범인을 제압했다고 한다. 마약범이, 그것도 칼로 인질극을 벌일 정도의 흉악범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절에 도착하니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프엉 씨와 절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같은 반 학생 짱 씨가 나와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나는 프엉 씨를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어린 학생에게서 항상 인자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프엉 씨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일부러 짓는 미소가 아닌 자연적인 미소이다. 그냥 미소가 얼굴에 녹아든 느낌이다. 게임을 할 때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듯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게임이 끝나면 또 인자한 프엉 씨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절에서 보니 그런 느낌이 훨씬 더 많이 느껴졌다. 정말 보살님 같이 보여진 달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고 학생이 아닌 참된 종교인으로 존중하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스님이라지만, 어떻게 어린 학생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절 안에 들어가고 큰 스님을 만났을 때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큰 스님을 보자마자 조금 놀랐다. 평소에 프엉 씨에게서 받았던 느낌의 몇 배를 그 스님에게서 받았다. 처음 본 사람인데, 말도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인데 그저 마주쳐서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실제로 부처님을 본 사람들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온몸에서 나오는 자비의 기운에 낯선 곳에 와서 조금 긴장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없어졌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분에게 와서 고민을 털어놓기만 해도 번뇌가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분과 같이 살며 가르침을 받으니 프엉 씨에게도 그런 느낌이 나는구나 싶었다.


나와 같이 초대받은 외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파 씨와 자원봉사를 하며 알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절을 구경시켜 준다고 했다. 역시 이 절은 한국의 절과 많이 달랐다. 베트남 절이 원래 이런 것인지 프엉 씨의 절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불교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절은 비교적 현대에 지어진 절이라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과 미륵전, 스님들의 생활 공간 등 전각이 나눠져 있고 거의 1층 건물인데 프엉 씨의 절은 방이나 층이 나눠진 형태로 한 건물에 모두 같이 있었다. 한국처럼 나무로 만든 건물이 아닌 콘크리트와 대리석 등의 현대식 건축물로 지은 것도 특이했다. 불상과 제사상 등도 우리나라 절과 분위기가 조금 달라서 그런지 혼자 있으면 조금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한국도 불교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불편하다기보다는 이질적이라는 느낌이었는데, 파 씨의 외국인 친구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불교와 거리가 먼 서양권 사람이라 그런지 이곳이 조금 무섭다며 자리를 떴다. 기분 상하지 않게 웃으면서 좋게 말했고 학생들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떠나자 학생들은 좀 뻘쭘해하며 내 눈치를 봤다.


"선생님도 가고 싶어요? 우리는 (선생님이 불편하다면 가셔도) 괜찮아요."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베트남 문화는 한국 문화하고 달라요. 저는 문화 공부를 좋아해요."


사실이었지만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더 과장해서 말했다. 학생들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식사 전까지 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놀았다. 이 방은 뭐하는 방인지, 저 물건은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겨우 위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베트남 학생의 절


절 구경이 끝나고 식사를 하러 1층에 내려갔다. 1층은 행사에 참여하러 온 주민들이 많아 복잡했다. 학생들과 스님들은 고맙게도 나를 먼저 챙겨 줬다. 자리에 앉았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 많았다.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는 음식도 있었다. 학생들은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음식 이름과 먹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선생님, 이거 먼저 먹어요. 아니 드세요! 이거는 여기에(소스에) 이렇게(찍어서) 먹어요."


절밥


모두 낯선 음식이었는데 다 맛있었다. 한국도 그렇고 베트남도 원래 절밥은 맛있는 건가? 식당에서 먹었던 베트남 음식보다 훨씬 맛있었다. 진심으로 맛있어하며 먹자 주변 스님들과 주민들이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나 같아도 우리나라 말도 못하는 외국인이 우리나라 음식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다면 그럴 것같다. 음식은 끊기지 않고 계속 나왔다. 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먹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밥을 먹고 그릇 치우는 거라도 거들려고 하자 주변에서 만류했다. 큰 스님이 와서 프엉 씨에게 뭐라고 말을 하자, 프엉 씨가 곧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 방을 구경할까요? 같이 가요."

"네. 좋아요!"


나는 일어나서 큰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큰 스님도 두 손을 모으고 따스한 미소로 고개를 숙여 내 인사에 답해 주셨다. 나는 학생들과 같이 프엉 씨의 방으로 갔다. 방은 아주 작았다. 부엌일을 도우러 간 학생 빼고 여섯 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용하는 책상과 책장, 옷장, 선풍기도 아주 낡았다. 프엉 씨는 이 방에서 동료 한 명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나 같으면 에어컨도 없이 이런 작은 방에서는 못 살 것 같은데, 프엉 씨는 한여름에도 낡은 선풍기 한 대를 룸메이트와 같이 쓰면서도 만족하는 듯했다. 내가 베트남 사람이 사는 집에 온 건 처음이라고 하자 자기 방이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직접 만든 듯한, 벽에 못으로 간신히 고정되어 있는 책장에 필기가 가득 되어 있는 세종한국어와 중국어 책들과 두 명이 번갈아서 같이 쓰는 아주 작은 책상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고등학생 때까지 우리 집에 내 방이 없었다. 언니랑 같이 방을 썼지만 그건 언니 방이었다. 책상도 없었다. 우리 집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쓰는 컴퓨터 책상과 언니 책상 두 개가 있었다. 나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집에서 컴퓨터 책상을 썼었다. 나는 나만의 방과 책상을 가지고 싶어 부모님께 떼를 썼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있는 자기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그때는 정말 싫었다.


그런데 비슷한 나이 대의 프엉 씨가 자기 방에 만족하며 지내는 걸 보니, 만족이나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고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다 ~한데'라고 남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지 말아야겠다. 그 '다른 사람'은 결국 진짜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보다 더 나은 처지의 사람들이니까. 만족과 행복의 기준이 타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때 많이 들었다.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에 밖에 나와서 단체 사진을 찍고 집에 왔다. 마약범 사건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학생들 덕분에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던 날이었다.


학생들과 절에서 찍은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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